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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2

이순신장군 백의종군 그리고 <난중일기> 임진왜란이 일어나 있는 상황에서도 붕당으로인한 조정은 혼란하기만 했다. 붕당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던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전과를 놓고서도 논의가 분분했다. 특히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이 문제가 되었는데, 조정은 원균을 충청 절도사(忠淸節度使)로 옮겼다. 하지만 조정 대신들은 대체로 원균의 편에 서서 여러 차례 이순신을 탄핵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와 강화교섭을 하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요시라(要時羅)라는 인물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다시 조선을 침략하러 바다를 건너오니 수군을 보내 이것을 막으라는 계책을 조정에 전달했고, 이를 믿은 조정은 도원수 권율을 통해 이순신에게 수군을 이끌고 출정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왜군의 계략에 빠져 큰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한 이순신은 출정하지 않았.. 2020. 3. 23.
이순신장군 임진왜란 그리고 백의종군 조선 14대 왕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통신사로 파견된 황윤길의 상소를 무시하고 김성일의 상소를 채택한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없다고 판단을 한다. 이 판단의 근거는 누구도 전쟁준비를 시작해서 생길 문제들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조선에서 유일하게 전쟁 준비를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1589년(선조 22) 이산해(李山海)의 추천으로 다시 관직에 나서게 된 이순신은 감사 이광(李洸)의 군관으로 전라도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조방장(助防將)과 선전관(宣傳官) 등을 거쳐 정읍현감이 되었으며, 1591년(선조 24)에는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부임하기도 전에 다시 전라좌도(全羅左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임명되었다. 전라좌수영(全羅左水.. 2020.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