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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4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조선 7대왕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조선이 개국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또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여인이다. 처음 왕자의 아내로 조선 왕실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이후 왕비가 되었고, 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놓쳐버리지 않았으며, 수렴청정을 통해 7년간 국가정책 최고결정권자의 자리에 있기도 하였다. 정희왕후의 65여 년 간의 인생은 격동의 조선 전기 정치사 어느 한 부분에서도 빠진 적이 없었다. 정희왕후 윤씨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시호는 정희(貞熹), 생전의 존호는 자성(慈聖)이다. 세종(世宗) 때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지낸 윤번(尹璠)의 딸이며, 1418년(태종 18) 당시 청주판관(淸州判官)으로.. 2020. 4. 1.
조선 8대 왕 예종 - 남이의 옥 남이의 옥이란 예종 때에 남이(南怡), 강순(康純) 등이 역모 혐의로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 예종은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지낸 왕이다. 그만큼 업적과 사고가 별로 없는 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종의 짧은 재위기간과는 상관없이 신하들 간의 세력다툼 크게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신하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생긴 큰 사건이 '남이의 옥' 사건이다. 남이는 태종의 외손으로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아 1457년(세조 3)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무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서 건주야인(建州野人)을 토벌하는 데 세운 전공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27세에 공조판서가 되고, 그 뒤 병조판서가 되었다. 1468년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강.. 2020. 3. 14.
예종의 짧은 재위기간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예종은 형인 의경세자가 비명횡사를 하자 세자에 자린에 오른다. 세조가 사망하고 성인이 되기전인 예종은 어머니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어 승하하기까지의 재위기간은 1년 3개월이 된다 아버지 세조처럼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려 했던 예종은 어지러운 시국에서도 뜻을 펼치려 애를 썼으나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 세조 때 일어난 계유난 이후 형성된 원훈세력(구공신)과 이시애의 난 이후 성장한 세력 신공신의 갈등으로 어지러웠던 시국이였으며 세조가 죽기전 어린왕을 걱정하 여 시행한 원상제 실시로 인해 신하의 권력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원상제란 어린 임금이 즉위했을 때 제상들이 임금을 보좌하는 것을 말한다 이시애의 난으로 세력을 키우게 된 신공신의 세력의 중심엔 남이가.. 2020. 2. 28.
조선 8대 왕 예종 - 이황 예종은 조선 7대 세조의 둘째아들로 출생했다. 세조의 장남이었던 의경세자가 장성한 후에 태어났기에 예종은 왕위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맏형인 의경세자가 요절을 하게 되므로 세자에 자리에 오른게 된 것이다. 예종은 성인이 되기 전인 19세에 왕위에 올랐기에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예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1468년, 19세의 나이였다. 예종은 세자였던 1460년에 11세의 나이로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 한씨를 아내로 맞이한다. 한명회의 딸 한씨의 나이 16세였다. 그리고 혼인을 한 다음해인 1461녕에 아들 인성대군을 낳게 된다. 즉, 12세의 소년이 아버지가 된 것이다. 조선 왕조의 가장 나이에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낳은 장순왕후는 산후병으로 사망을 하고 아들인 의성대.. 2020.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