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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변2

을묘왜변 그리고 비변사 을묘왜변은 1555년(명종 10) 왜구가 전라남도 강진·진도 일대에 침입해 약탈과 노략질한 사건이다. 을묘왜변의 배경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점과 일본 국내 사정의 혼란에서 일어났다. 조일 관계에서 보면 1544년(중종 39) 왜인들의 약탈로 야기된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으로 조선에서는 그들의 내왕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사죄와 통교 재개 허용을 바라는 간청을 받아들여 1547년(명종 2) 정미약조(丁未約條)를 맺고 왜인들의 내왕 통교를 허용하였다. 정미약조는 결과적으로 왜인들의 위반 정도에 따라 통제가 강화된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너그럽게 취급해 주던 조선측의 방침은 강화되었으며, 왜인들의 내왕무역에 대해서도 통제 규정이 강화되어 여러 가지 규제가 .. 2020. 4. 20.
명종, 을묘왜변이 일어나다 명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며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명종의 재위기간 22년은 나라 아팎으로 혼란이 컸다. 안으로는 왕실 외척의 폭정이 심했고, 탐과오리들이 득세했으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등 각종 비리가 난무했다. 게다가 밖으로는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다. 이때 일어난 것이 을묘왜변이다. 을묘왜변이란 조선 명종 때 왜구가 전라남도 영암·강진·진도 일대에 침입한 사건을 말한다. 을묘왜변의 배경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점과 일본 국내 사정의 혼란에서 일어났다. 조일 관계에서 보면 1544년(중종 39) 왜인들의 약탈로 야기된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으로 조선에서는 그들의 내왕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사죄와 통교 재개 허용을 바라는 간청을 받.. 2020.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