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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3

숙종 6년 경신환국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 남인(南人)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사건을 말한다. 숙종은 아버지인 현종이 예송논쟁에 휩싸여 신권에 끌려다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14살에 등극하자마자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나 증조할머니 장렬왕후 조씨의 수렴청정 없이 곧바로 친정을 하였다. 아래 꾸준히 언급되는 삼복(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이 남인과 가깝게 지냈으며, 복선군은 현종 경신대기근 시기 청나라에 가서 강희제에게 대량의 구휼품을 얻어왔다. 군약신강이란 표현이 나온 바로 그 사행이다. 이 사행은 서인인 현종비 명성왕후와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 김우명, 김좌명 등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무렵 북벌론을 강경하게 주장했던 윤휴 등은 "청나라가 삼번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를 틈타 요동을 정벌.. 2020. 7. 7.
숙종의 계비 < 인현왕후 민씨 > 인현왕후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계비. 기사환국 때 폐서인이 되었다가 갑술옥사로 다시 왕후로 복위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궁녀가 쓴 소설《인현왕후전》이 전해진다. 성은 민씨(閔氏)이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존호(尊號)는 효경숙성장순(孝敬淑聖莊純), 휘호(徽號)는 의열정목(懿烈貞穆)이다. 형조판서 등을 지낸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딸로서 1681년 숙종의 계비(繼妃)가 되었다. 숙종은 세자로 책봉되고 김만기(金萬基)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숙종이 왕으로 등극하자 김씨는 인경왕후(仁敬王后)가 되었다. 하지만 인경왕후가 천연두로 20세에 사망하자 인현왕후가 숙종 비로 간택되었던 것이며 그녀의 나이 15세였다. 인현왕후는 1680년,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가 천연두를 앓으면서 20살에 요절.. 2020. 7. 2.
조선 19대 왕 숙종 - 이 순 숙종은 조선 제19대 왕으로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 · 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사업을 추진해 완결을 보았다. 주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해 상평통보를 주조,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했다. 영토 회복 운동을 전개했고 금위영을 추가로 설치하여 5영체제를 완결했다. 숙종의 자 명보(明譜), 휘 순(焞), 현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이며 비는 김만기(金萬基)의 딸 인경왕후(仁敬王后)이다. 계비는 민유중(閔維重)의 딸 인현왕후(仁顯王后), 제2계비는 김주신(金柱臣)의 딸 인원왕후(仁元王后)이다. 1667년(현종 8) 왕세자에 책봉되고, 1674년 14세 때 조선왕조 19대 임금에 즉위하였다. 인경왕후 김씨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고, 희빈 장씨에게선 두.. 2020.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