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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일화2

이색의 시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 3은 중의 하나다. 이성계와는 친숙한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났고, 14세에 성균관 시험에 합격한 준재였다. 그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여러 차례 출사를 종용받았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망국에 대한 시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 전공을 찬양한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다. 이성계가 운봉 싸움에서 왜구의 적장 아기발도를 죽이고 개선했을 때, 권근. 김구영. 이색 등 당대의 문관들이 시를 지어 하례했다. 이색의 시는 찬사의 극치였다. 적을 소탕하는 썩은 나무 꺾기 같았네 삼한의 기쁜 기색, 여러분에게 달렸소 백일 같은 그 충성, 하늘에 안개 걷히고 청구에 떨치는 위엄, 바다가 잔잔하오 빛난 자리에 무공을 칭송하는 오래요 능연각 높은 집에 영웅의 화.. 2020. 7. 17.
태조 이성계가 만든 충신 두문동 72현 (야사이야기) 충절을 상징하는 두문동은 경기도 개퐁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예 지명이다. 고려가 망하자 조선을 반대했던 고려 유신 신규. 신혼. 신우. 신순. 조의생. 임선미. 이경. 맹호성. 고천상. 서중보. 성사재 등 72현이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 새 왕조에 있어서는 두문동이 눈엣가시였다. 아무리 회유책을 쓰고 높은 관직을 준다 해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이성계는 생각다 못해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려는 뜻도 있었으나, 고려의 충절 높은 유신들을 끌어안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과거를 치르는 날 이성계는 초노한 마음으로 두문동의 인재들이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성계의 짝사랑일 뿐이었다. 두문.. 2020.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