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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5

유네스코 세계유산 동구릉 2편 <현릉과 건원릉> 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 이야기 을 소개합니다. 동구릉 2편에서는 조선 왕릉의 석물, 문종과 현덕왕후가 잠든 현릉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을 소개하려 한다. 조선 왕릉의 석물은 주로 능침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석물이 피장자를 위해 만들어진 요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은 다른 나라의 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특유의 능묘 조강의 구조로 봉분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실제적으로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병풍석 중앙의 면석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기고, 모서리 우석에는 영탁을 조각하며 모란, 구름 등이 장식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봉분을 보호하고 상징적으로는 수호의 역할을 한다. 은 병풍석 밖으로 봉분을 울타리처럼 두르거나 병풍석 없이 봉분을 두르고 있는 석물로 우리나라 능제의 특.. 2020. 8. 24.
이색의 시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 3은 중의 하나다. 이성계와는 친숙한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났고, 14세에 성균관 시험에 합격한 준재였다. 그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여러 차례 출사를 종용받았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망국에 대한 시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 전공을 찬양한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다. 이성계가 운봉 싸움에서 왜구의 적장 아기발도를 죽이고 개선했을 때, 권근. 김구영. 이색 등 당대의 문관들이 시를 지어 하례했다. 이색의 시는 찬사의 극치였다. 적을 소탕하는 썩은 나무 꺾기 같았네 삼한의 기쁜 기색, 여러분에게 달렸소 백일 같은 그 충성, 하늘에 안개 걷히고 청구에 떨치는 위엄, 바다가 잔잔하오 빛난 자리에 무공을 칭송하는 오래요 능연각 높은 집에 영웅의 화.. 2020. 7. 17.
태조 이성계, 무학도사를 만난다 무학도사하면 태조 이성계를 떠올릴 수 있고 정도전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의 기록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무학도사의 법명은 자초(自超), 속성은 박(朴)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陝川郡: 삼기(三岐)) 삼가면에서 출생하였다. 1344년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진주(鎭州) 길상사(吉祥寺)·묘향산 금강굴(金剛窟) 등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하여 그때 원에 와 있던 혜근(惠勤)과 인도승 지공(指空)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고려말 퇴락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이성계를 만나.. 2020. 3. 1.
조선을 건국한 왕 태조의 가족관계 태조는 왕비 2명, 후궁 4명, 자녀 8남 5녀 두었다. 그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의 둘째아들 영안대군이 조선2대 왕인 정종이며, 다섯째 아들 정안대군이 조선 3대 왕인 태종이 된다. 하지만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세자에 올렸던건 그가 사랑했던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 의안대군이었다. 하지만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 이방원. 정안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신의왕후 한씨는 1337년 출생하여 1391년에 사망했다. 태조의 첫째 부인이자 정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본관은 안변으로 밀부사 증영문하부사 한경과 신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성계가 아직 벼슬하지 못하던 때에 결혼하여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고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한씨 소생으로 방우. 방과. 방의. 방간... 2020. 2. 29.
태조 이성계 조선 1대왕이 되다 King Taejo Yi Seong-gye of Joseon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새 왕조를 열면서 고려의 수도였던 개강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고려의 오랜 터전이였던만큼 이성계의 반대하는 세력들이 많았으며 풍수지리설을 보아도 이미 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처음으로 도읍지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했다. 도읍지 선정에서 궁궐이 앉아야 할 자리로 정도전과 하륜의 대립이 있었으나 정도전의 주장대로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게 된다. 여기서 정도전이 한양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한양은 한강과 가까이 있어 수도를 통해 세금을 거둬들이기가 좋고, 산이 있고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로 최고의 명당이라고 하였다. 또한 전통 유교의 방식으로 북쪽의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쪽을 향하게 하여 궁을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When Kin..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