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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2

행주대첩 행주대첩은 조선 선조 때인 1593년에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행주 산성에서 힘을 합쳐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이다. 진주 대첩, 한산도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첩 중 하나로 꼽힌다. 권율은 왜란 초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있으면서 1592년(선조 25) 7월 배티〔梨峙〕싸움에서 대승한 공으로 전라도관찰사 겸 순찰사가 되었다. 권율은 관군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 뒤, 남쪽으로 내려온 명나라의 원군과 호응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관군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북상하던 중 수원 독산성(禿山城)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어 그는 군대를 서울 근교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에게 적당한 지역을 물색하도록 하였다. 조경은 양천(陽川)에서 한강을 건너 병력을 주둔시킬 만한 곳을 찾아내.. 2020. 4. 29.
권율장군, 임진왜란 행주대첩의 승리 권율은 조선시대 의주목사, 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장수이다.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산성 전투, 행주대첩 등에서 승리했다. 임진왜란 7년 간 군대를 총지휘한 장군으로 전공을 세웠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도첨의(都僉議) 권보(權溥)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화부사 권적(權勣), 아버지는 영의정 권철(權轍), 어머니는 적순부위(迪順副尉) 조승현(曺承晛)의 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1591년에 재차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바로 의주목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해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 2020.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