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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정치2

환국으로 왕권 강화 < 숙종의 업적 > 숙종은 수차례의 환국으로 조정 대신들을 교체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을 통해 붕당 간의 견제와 균형이 붕괴되고 숙종은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절대적 권력을 휘둘렀지만 그의 여인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희생되었다. 숙종은 붕당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다. 그 도구로 선택한 방식이 바로 ‘환국’이였다. 환국은 왕이 조정의 대신들을 손바닥 뒤집듯이 전면적으로 교체하는 걸 뜻한다. 이전까지의 왕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몇 명만 파직했지만 숙종은 대부분의 관리들을 모조리 바꿨다. 그러니 남인이 집권했다가 졸지에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는 상황이 연출되었 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여당이 있어도 야당이 여전히 목소리를 내면서 세력간에 견제와 균형을 맞췄는데 숙종 때부턴 여당만 있는 상.. 2020. 7. 11.
숙종 6년 경신환국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 남인(南人)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사건을 말한다. 숙종은 아버지인 현종이 예송논쟁에 휩싸여 신권에 끌려다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14살에 등극하자마자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나 증조할머니 장렬왕후 조씨의 수렴청정 없이 곧바로 친정을 하였다. 아래 꾸준히 언급되는 삼복(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이 남인과 가깝게 지냈으며, 복선군은 현종 경신대기근 시기 청나라에 가서 강희제에게 대량의 구휼품을 얻어왔다. 군약신강이란 표현이 나온 바로 그 사행이다. 이 사행은 서인인 현종비 명성왕후와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 김우명, 김좌명 등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무렵 북벌론을 강경하게 주장했던 윤휴 등은 "청나라가 삼번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를 틈타 요동을 정벌..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