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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시대 대학자, 훈군파 학자 최항 최항은 조선 초기의 훈구파 대학자이며 세조를 도와 문물제도 정비에 크게 공헌했다. 역사, 언어 등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434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 부수찬이 되어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 1461년에는 양성지(梁誠之)의 《잠서(蠶書)》를 국역 간행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 조선 초기의 법률제도를 집대성했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정보(貞父), 호는 태허정(太虛亭)·동량(㠉梁). 최충(崔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윤문(崔潤文)이고, 아버지는 증영의정 최사유(崔士柔)이다. 어머니는 오섭충(吳燮忠)의 딸이다. 서거정(徐居正)의 자부(姉夫)이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집현전부수찬이 되었다. 이 해『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편.. 2020. 4. 6.
연산군 일기 는 조선왕조 제10대 왕 연산군의 재위기간 1494년 12월에서 1506년 9월인 11년 9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모두 63권 46책이며, 활자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군은 반정으로 폐위되었으므로 묘호가 없고, 그 실록도 노산군(단종), 광해군의 예와 같이 일기라고 칭하였으나, 체제나 내용 면에서 다른 실록과 별로 다름이 없다. 의 편찬은 연산군이 세상을 떠나자 1506년인 중종1년 11월에 시작되었다. 폐위된 왕의 실록 편찬이므로 일기수찬이라는 이름으로 일기청이 설치되고, 대제학 김감이 감춘추관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다음해 1월에 김감이 대신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므로 편찬 작업이 일시 중단되었으나 후임 대제학 신.. 2020. 4. 6.
성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9대 왕 성종의 재위기간 1469년 11월에서 1494년 12월인 25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297권 150책으로 활판으로 인쇄되었다. 은 제14권 성종 3년 정월부터 기사의 다소에 상관없이 반드시 1개월을 1권으로 편철하였기 때문에 권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성종실록은 성종이 세상을 떠난 지 4개월 뒤인 1495년인 연산군1년 4월에 영의정 노사신 등의 건의로 춘수관 안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였다. 편찬 도중인 1498년인 연산군4년에 김일손이 실록청에 제출한 사조 가운데 그의 스승 김종직이 쓴 과 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 2020. 4. 6.
성종시대 성리학자, 사림 김굉필 김굉필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자칭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김굉필이 정계에 진출하여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성종의 사림 등용 정책 때문이었다. 성종은 계유정난 이후 정권을 장악하여 보수반동을 고집하던 훈구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향촌사회에서 유학을 수학하던 사림들을 등용하기 시작하였다.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小學)》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칭하였다. 1480년 사마시.. 2020. 4. 5.
성종의계비, 제헌왕후 폐비 윤씨 폐비 윤씨는 조선 제9대 성종의 계비(繼妃)이자 제10대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판봉상시사(判封常寺事) 윤기무(尹起畝)의 딸로 어머니는 고령 신씨(高靈 申氏)이다. 외할아버지인 신평(申枰)은 신숙주(申叔舟)의 숙부(叔父)이다. 그녀의 본관은 함안이고, 1455년 출생하여 어릴 때 궁궐로 입궁을 해 당시 자신보다 2살 나이가 어렸던 성종의 성총으로 후궁이 될 수 있었다. 제헌왕후 윤씨의 아버지 윤기견은 집현전에 출입을 할 수 있을 만큼 학문에 밝은 이였고, 판봉상시사라는 벼슬을 하사받았으나 일찍 세상을 떴다. 제헌왕후 윤씨의 생모 신씨는 윤기현의 두번째 부인이었는데 윤씨를 가졌을 때 태몽은 온 집안에 불빛이 환하게 비춰들었다고 한다. 윤씨는 성종(成宗, 1457~1494)의 후궁(後宮)으로 간택되어 1473.. 2020. 4. 4.
세조의 책사, 한명회 조선 전기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왕위에 등극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을 좌절시키고, 그들을 살해하는데 가담하였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관직이 삭탈되어 압구정에서 노년을 보내다 사망하였다 본관 청주(淸州). 자 자준(子濬). 호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시호 충성(忠成).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의 아버지이다. 그의 조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명나라에 가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받고 돌아온 한상질(韓尙質)이며 부친은 한기(韓起)이다. 한명회는 잉태된 지 7달 만에 태어나, 어려서는 사지가 완전치 못했는데, 차츰 장성하면서 체구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커지고, 또 지모가 남달리 뛰어났다. 젊었을.. 2020. 4. 2.
세조의 신하가 된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냈으며 4차례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신덕린(申德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신포시(申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신장(申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이다. 신숙주의 부친인 신장은 참판이라는 벼슬이 보여주듯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졸기에는 그가 인품이 온후하고 사장(詞章) 과 초서ㆍ예서에 뛰어났지만, 술을 너무 좋아한 것이 단점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의 능력을 아낀 세종이 절주를 당부했지만, 과음은 결국 그의 사인(死因)이 되었다(세종 15년 2월 8일). 그러니까 신숙주는 16세 때 아버지를 .. 2020. 4. 1.
생육신 김시습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정리했으며 《산거백영》을 썼다.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 2020. 4. 1.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조선 7대왕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조선이 개국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또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여인이다. 처음 왕자의 아내로 조선 왕실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이후 왕비가 되었고, 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놓쳐버리지 않았으며, 수렴청정을 통해 7년간 국가정책 최고결정권자의 자리에 있기도 하였다. 정희왕후의 65여 년 간의 인생은 격동의 조선 전기 정치사 어느 한 부분에서도 빠진 적이 없었다. 정희왕후 윤씨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시호는 정희(貞熹), 생전의 존호는 자성(慈聖)이다. 세종(世宗) 때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지낸 윤번(尹璠)의 딸이며, 1418년(태종 18) 당시 청주판관(淸州判官)으로.. 2020.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