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639

중종의 어의녀 장금 장금은 조선 중종 때의 어의녀로 왕의 주치의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일명 대장금(大長今)으로 '큰' 또는 '위대한'을 뜻하는 '대(大)'를 써서 대장금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출생연도, 성씨와 본관, 출생 배경 등에 대해서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중종의 어의녀로 중종의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의녀 가운데 유일한 것이다. 천민 신분의 의녀로서 수많은 남자 의관(醫官)을 제치고 왕의 주치의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남성 위주의 엄격한 관료주의제 아래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중종(中宗)의 총애를 받았으며, 뛰어난 의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1515년 인종이 태어날 때 호산하여 공이 있었다'는 기록과 '중종으로부터 쌀과 콩을 포상으로 받았다'는 기록 등이 전해진다. 조선왕조실.. 2020. 4. 18.
중종시대 문신 김안로 김안로는 조선전기 이조판서, 도총관,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이숙(頤叔), 호는 희락당(希樂堂)·용천(龍泉)·퇴재(退齋).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우신(金友臣), 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曹參議) 김흔(金訢)이며, 어머니는 윤지(尹墀)의 딸이다. 부인은 채수(蔡壽)의 딸이고, 아들은 조선 중기의 화가인 김시(金禔)와 김기(金祺)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었고, 1506년(연산군 12)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에 처음 임명된 뒤 수찬(修撰)·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 등 청환직(淸宦職: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내리는 관직)을 역임하였다. 1511년 유운(柳雲)·이행(李荇)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직제학(.. 2020. 4. 18.
중종시대 학자 남곤 남곤은 1471(성종 2)∼1527(중종 22).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 고조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증조할아버지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남을진(南乙珍), 할아버지는 형조도관정랑(刑曹都官正郞) 남규(南珪), 아버지는 곡산군수(谷山郡守) 남치신(南致信)이다. 어머니는 용양위호군(龍驤衛護軍) 하비(河備)의 딸 진주하씨(晉州河氏)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9년(성종 20) 생원시(生員試)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494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부제학(副提學)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냈다. 개혁적인 성향의 신하였으며 성종 때.. 2020. 4. 18.
중종시대 관련 인물 - 사암 박순 박순[朴淳, 1523(중종 18)~1589(선조 22)]은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화숙(和叔)이고, 호는 청하자(靑霞子)·사암(思菴)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본관은 충주(忠州)로서, 아버지는 한성부 좌윤을 지낸 우(祐, 1476~1547, 호는 六峰)이고, 어머니는 당악 김씨(棠岳 金氏)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서 문장가로도 알려진 박상(朴祥)은 그의 백부이다. 박순의 집안은 11대조부터 관직에 나아가 대대로 호서에 살다가 이후 광주(光州)·나주(羅州) 등으로 처향(妻鄕)을 따라 이주하면서 호남 사람이 되었다. 박순 역시 나주에서 태어났으나, 6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광주에서 서모에 의해 양육되었다. 18세에 진사가 되고 이후 개성부 유수였던 아버지의 임지에서 서경덕(徐敬德)에게 .. 2020. 4. 18.
중종시대 관련 인물 - 회재 이언적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그의 기보다 이를 중시하는 주리적 성리설은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일강십목소〉는 그 정치사상을 대표한다. ‘이언적수필고본일괄’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 본관은 여강(驪江: 여주(驪州)).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회재라는 호는 회암(晦菴: 주희의 호)의 학문을 따른다는 견해를 보여준 것이다. 할아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이고, 아버지는 생원 이번(李蕃)이며, 어머니는 경주손씨(慶州孫氏)로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성리학의 방향과.. 2020. 4. 17.
화담 서경덕 과 황진희 화담 서경덕은 개성 출신이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화담(花潭). 아버지는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완성하여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일화로, 그가 어릴 때부터 생명 현상의 이치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달랐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일화다. 서경덕이 12살 때(1501) 서당에서 [서경]의 ‘요전’에 나오는 ‘366일을 1년으로 삼고 윤달로 사시(四時)를 정하고 해를 이루게 했다’(三百有六旬有六日, 以閏月定四時成歲)라는 대목을 읽는데, 훈장님이 이를 정확히 설명해주지 못했.. 2020. 4. 17.
중종시대 학자 남명 조식 조식[曺植, 1501(연산군 7)~1572(선조 5)]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건중(健中) 혹은 건중(楗仲)이고, 호는 남명(南冥)·방장산인(方丈山人)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본관은 창녕으로, 경상도 삼가현(三嘉縣) 토골[兎洞]에 있는 외조부 이국(李菊)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주자(朱子)·정자(程子) 등의 초상화를 손수 그려 병풍으로 만들어 펼쳐놓고 자신을 독려하였다 1520년 사마시 초시와 문과 초시에 합격했으나, 그 다음해 합격에 실패하였다. 1526년 부친이 죽자 상을 마치고 의령의 산사에서 공부를 하였다. 1531년 생계가 곤란하자 살림이 넉넉한 김해의 처가를 찾아가 탄동(炭洞)에서 '산해정'(山海亭)이란 정자를 지어놓고 생활하였다. 1533년 .. 2020. 4. 15.
퇴계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 사단칠정은 이황과 고봉 기대승 간에 전개된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관한 이기론적(理氣論的)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말한다. 이황은 이(理)와 기(氣)가 시간상ㆍ공간상 분리되어 발동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고, 기대승은 이ㆍ기의 시공상의 분리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겸발설(理氣兼發說)을 주장하였다. 양자는 모두 기발(氣發)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인 기발일도론(氣發一途說)을 견지한다. ㆍ사단(四端) : 맹자가 내세운 인간도덕성의 근간이 되는 측은지심(惻隱之心)ㆍ수오지심(羞惡之心)ㆍ사양지심(辭讓之心)ㆍ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이것들은 이(理)를 통해 나타나는 마음이라는 것 ㆍ칠정(七情) : 기쁨(喜)ㆍ노여움(怒)ㆍ슬픔(哀)ㆍ두려움(懼)ㆍ사랑(愛)ㆍ미움(惡)ㆍ욕심(慾)의 7가지 감정으로, 이것들은 .. 2020. 4. 15.
퇴계이황의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있는 서원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조영하기 훨씬 전부터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칠 건물을 지었다. 1546년 퇴계가 마흔여섯 되던 해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경상도 예안 건지산 남쪽 기슭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었고, 1550년에는 상계의 퇴계 서쪽에 3칸 규모의 집을 짓고 집 이름을 한서암(寒棲庵)이라 하였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1551년 한서암 동북쪽 계천(溪川) 위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짓고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는 퇴계종택(宗宅)이 있다. 지금의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 이황(李滉)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이 세웠다.. 2020.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