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639

중종, 기묘사화 '선비들의 죽음' 기묘사화는 네 개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의 피화’라는 의미에 가장 적합한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삼사의 영향력이 대단히 팽창했을 때 국왕과 일부 대신이 그 관서를 이끈 주요 인물들을 전격적으로 숙청한 사건이었다. 1519년(중종 14) 남곤(南袞)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 사류(新進士類)들이 숙청된 사건이다. 조광조와 기묘사림이 삼사를 장악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중종의 확고한 신임이었다. 특히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는 그야말로 물과 고기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각별했다. 등용된 지 2년 반만에 당상관에 오르고(조광조는 1515년(중종 10년) 6월에 벼슬을 시작해 1517년 윤12월 직제학이 되었다), 짧게는 사흘부터 보통.. 2020. 4. 12.
중종 실록 은 조선왕조 제11대 왕 중종의 재위기간 1506년 10월에서 1544년 11월에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그러나 제105권에는 인종이 즉위한 1544년 11월 16일부터 12월 말일까지의 기사가 합편되어 있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105권 102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은 인종 때에 그 쳔찬이 계획되었으나. 당시 대, 소윤 정쟁이 격렬하였고 인종이 재위 9개우러 만에 세상을 떠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명종이 즉위한 뒤에도 을사사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바로 착수하지 못하다가, 명종원년인 1546년 가을에 비로소 춘추관에 실록청을 두고, 과 함께 편찬에 착수하였다. 명종 5년인 1550년 10월, 시작한 지 5년 만에 재위 39년간의 기록을 실은 1백5권이 완성되어 각 사고에 봉인되었다. .. 2020. 4. 10.
연산군시대 사간 이극돈 이극돈은 조선 전기의 문신. 좌리공신 4등으로 광원군(廣原君)에 봉해졌다. 성절사,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고(士高). 이집(李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며,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1457년(세조 3)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정과로 급제해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에 임명되고 1459년(세조 5) 형조좌랑이 되었다. 1461년(세조 7) 통례문판관에 이어 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세자시강원필선 등을 지내고, 1467년(세조 13) 호군(護軍)으로 부산포에서 유구국 사신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사헌부집의로 임명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호전(戶典) 중에서 잘못된 곳을 지적하고, 불.. 2020. 4. 10.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인조는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인조는 반정이라는 거사를 직접 진두지휘 하였다. 인조는 계획이 여러 사람들 입을 통해 누설될 위기에 처해지자 서두를 수 밖에 없었고 조바심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인조는 예정일 보다 일찍 반정을 일으켰고 이런 탓에 치밀하지도 못한 느낌이지만, 군왕이었던 광해군은 무방비 상태였다. 광해군이 도망간 이상, 인조는 왕위에 오른 것이나 진배없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 2020. 4. 10.
조선 16대 왕 인조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다 인조의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비(繼妃)는 조창원(趙昌元)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조선 16대 왕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뒤에 元宗으로 추존됨)과 좌찬성 구사맹의 딸(뒤에 인헌왕후로 추존) 사이에서 맏아들로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인조가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에 피신 중이었기 때문이다.인조의 조부가 되는 선조는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늙어서 얻은 영창대군 외에.. 2020. 4. 9.
연산군시대 학자 김일손 <조의제문>을 사초하다 김일손은 조선전기 『탁영집』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대대로 청도에서 살았다.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김맹(金孟)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 소미산인(少微山人),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조부는 김극일(金克一), 부친은 자진(子進) 김맹(金孟)이다. 김일손은 1464년(세조 10) 경상도 청도군 상북면 운계리 소미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본관은 김해이다. 조부인 김극일(金克一)은 길재(吉再)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부친 김맹(金孟) 역시 가학을 계승하고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金叔滋)에게 학문을 배웠다. 김일손 또한 김.. 2020. 4. 7.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장녹수는 조선 중기 연산군의 총희(寵姬)이다. 충청도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낸 장한필(張漢弼)과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첩의 자녀였기 때문에 천민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장녹수는 가난해서 시집을 여러 번 갔으며, 마지막에는 제안대군(齊安大君: 예종의 둘째 아들)의 노비로 들어가 그곳에서 대군의 노비와 혼인하여 아들을 하나 두었다. 이후에 그녀는 가무(歌舞)를 익혀 이름을 떨쳤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뛰어난 미색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춤과 노래에 탁월한 능력을 겸비하여 소문이 자자했던 듯하다. 연산군은 그 소문을 듣고 그녀를 흥청(興淸)으로 뽑아 궁궐에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청은 연산군 대에 뽑았던 일 등급 기녀였다. 연산군은 기녀 제도를 확.. 2020. 4. 7.
연산군시대 문신, 유자광 유자광은 조선전기 병조정랑, 한성부판윤, 장악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얼 출신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예종 때에는 ‘남이의 옥’을, 연산군 때에는 무오사화를 주도하며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字)는 우후(于後)이다. 부윤(府尹)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庶子)로 전라도(全羅道) 남원부(南原府)에서 태어났으며 모친은 최씨(崔氏)이다.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낸 오성군(筽城君) 유자환(柳子煥)의 서제(庶第)이다. 함양호장(咸陽戶長)을 지낸 박치인(朴致仁)의 딸과 결혼하여 유방(柳房)과 유진(柳軫) 등을 낳았다. 1467년(세조 13) 왕실의 호위병인 갑사(甲士)로 있다가 하번(下番)하여 고향인 남원에 머무르고 있다가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세조(世.. 2020. 4. 7.
성종의 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 인수대비 소혜왕후(昭惠王后)는 1437(세종 19)∼1504(연산군 10). 조선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비(妃). 성은 한씨 (韓氏). 본관은 청주(淸州). 서원부원군 확(確)의 딸이며, 좌리공신(佐理功臣) 치인 (致仁)의 누이동생이다.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라는 시호 보다 인수대비(仁粹大妃)로 유명한 한씨는 실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간 왕실여성이며, 여성 지식인이다. 조선 제9대왕 성종의 어머니이자,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의 할머니로서 더욱 유명한 인수대비는 시아버지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몸소 지켜보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잃어버렸던 왕비 자리를 대신해 자신의 어린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면서 대비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훈(內訓)]이라는 여성 교육서를 만든 지.. 2020.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