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639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적장녀. 단종의 친누이이며 정종(鄭悰)과 혼인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문종의 1남 2녀 중 장녀이자 제6대 왕 단종의 친누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다. 1450년(세종 32) 본관이 해주(海州)로 참판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정종과 혼인하였고 정종은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졌다. 경혜공주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문종은 즉위 전이었고, 어머니 권씨는 세자의 후궁으로 품계는 종3품 양원(良媛)이었기 때문에 '현주'로 불리게 되었다. 위로 언니가 있었으나 태어난 지 1년도 못 되어 1433년에 죽었다. 어머니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경혜공주는 현주에서 군주로 승격되고, 세자빈의 거처인 자선당에서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기.. 2020. 3. 31. 단종의 고명대신 김종서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조선 세종 때 여진을 정벌하고 6진을 설치한 관료이다. 세종 때 6진 개척을 주도한 인물로, 그리고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세력에 의해서 살해된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300여 년이 지난 영조 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지평을 지낸 김태영이고, 아버지는 도총제 김추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배규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우정언·이조정랑 등을 지내고 1415년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을 시작으로, 죽산현감을 거쳐 1418년 병조좌랑에 올랐다. 1426년 이조정랑이 되어 전라도의 왜인 포획 상황을 조사 · 보고하였고, 1427년 황해도에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었다. 1433년(세종 15) 12월.. 2020. 3. 31. 광해군, 대동법의 시행하다 임진왜란을 겪고 조선의 어느 한곳 멀쩡한 곳이 없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올라 세금개혁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대동법을 시행한다. 대동법이란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이다 대동법을 이해하려면 공납을 알아야 한다. 공납이란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상품인 특산품을 세금으로 걷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나거나 흉년이 들어 특산품을 생산하지 못한 경우 세금을 낼 수 없게 되어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물건으로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라에서 걷어야 할 물건의 종류와 수가 정해져 있어 함부로 다른 물건을 대신 바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공납을 내지 않으면 더 큰 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다른 마을에서 물건을 사서 바치거나, 아니면 중간 상인.. 2020. 3. 28.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강홍립 장군 광해군은 선조의 적장자였던 영창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세를 일으키던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두 세력의 중간에서 균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것을 중립외교란 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사림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된다. 광해군은 왕족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쟁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대외정책 제1순위는 전쟁 발생 방지였다. 당시 동아시아의 세력도는 요동치고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 파병으로 재정이 고갈되어 약해지고 여진족은 급격하게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마침내 여진족은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에 선전포고까지 한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전쟁에서 조선을 구해준 슈퍼 히어로로 생각하고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에 후금을 막을 지원병.. 2020. 3. 28. 조선 15대 왕 광해군 - 폐모살제 그리고 인조반정 임진왜란의 막이 내렸다. 의인왕후 사후 선조는 계비를 간택, 1606년 선조의 계비가 된 인목왕후가 그 후 영창대군(적자)을 낳자, 광해군을 내심 탐탁치 않게 여기고 미워하던 부왕 선조는 다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소북파의 유영경 등도 적통론을 내세워 영창대군 옹립계획을 세운 선조를 지지하였다. 특히나 선조 자신이 서얼에다가 방계승통을 했다는 콤플렉스까지 겹치면서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선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며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1609년 광해군은 자신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자신을 압박하던 명나라가 활용하던, 친형제이자 장자 임해군을 .. 2020. 3. 28. 세종이 아꼈던 신하 성삼문 성삼문은 조선전기 홍문관수찬, 예조참의, 예방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신. 개성유후(開城留后)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성달생(成達生)이고, 아버지는 도총관(都摠管) 성승(成勝)이다. 어머니는 현감 박첨(朴襜)의 딸이다. 영웅이 탄생할 때 흔히 갖춰지는 탄생설화가 있듯이 성삼문도 태어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 하는 세 번의 소리가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의 이름인 ‘삼문(三問)’의 유래이기도 한데, 문헌으로 전하는 내용은 아니고 구전 설화에 가깝다. 성삼문은 1435년 18살 되던 해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3년 뒤인 21살 때에 하위지(.. 2020. 3. 27. 집현전 학자 박팽년 박팽년은 조선전기 충청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 회덕(懷德) 출신. 박원상(朴元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안생(朴安生)이고, 아버지는 박중림(朴仲林)이며, 어머니는 김익생(金益生)의 딸이다. 박팽년은 과묵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성품은 침착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소학(小學)] 책에 나오는 예절대로 실천하여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아서 의관을 벗지 않아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명의 천순(天順) 황제가 오랑캐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박팽년은 침실에서 자지 않고 항상 밖에서 짚자리를 깔고 잤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천자가 오랑캐 나라.. 2020. 3. 27. 집현전 학자 정인지 정인지는 조선전기 병조판서, 좌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정익(鄭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고,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다.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정도전(鄭道傳)·권우(權遇)의 문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했고, 141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에 제수되었다. 1415년 예문관부교리에 개수(改授)되고, 이어 감찰·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년) 8월 병조좌랑을 거쳐 1421년(세종 3)에는 상왕(上王 : 태종)의 “대임을 맡길만한 인물이니 중용하라.”는 요청과 함께 병조정랑에 승직되었다.. 2020. 3. 27. 태종의 둘째아들 효령대군 효령대군은 조선전기 제3대 태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이다. 이름은 이보(李), 초명은 이호(李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이다. 1407년(태종 7) 효령군(孝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효령대군으로 진봉(進封)되었다. 부인은 정역의 딸 예성부부인이며 6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측실에게서 1남 1녀를 두었다.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형인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로 책봉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였다. 충녕과는 우애가 깊었고 세종이 자기 집에 들르게 되면 밤이 깊도록 국사에 대해 의논했다고 전한다. 특히, 불교에 독실하.. 2020. 3. 27. 이전 1 ··· 57 58 59 60 61 62 63 ···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