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639

성종의 업적 조선의 9대 왕 성종은 모범적인 왕이였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도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학자들과 경연을 매일 하였다고 한다. 그런 성종이 이루어낸 업적은 조선 정치제도의 기틀이 된다.\ 성종의 할아버지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종이 만든 집현전을 없앤다. 집현전 학자들의 경연은 왕권을 강화하고 픈 세조에겐 불편한 일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성종은 왕이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을 부활시킨다. 그런데 어린 왕 성종이 열심히 공부를 하였더라도 조선 최고의 석학들과 토론하고 학문을 논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였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인 홍무관을 설치한다. 성종은 경연제도를 부활시키고 홍문관을 설치하.. 2020. 2. 28.
조선 9대 왕 성종 - 이혈 성종은 조선의 7대 왕 세조의 첫째 아들인 의경세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공신 한확의 딸 소혜왕후 한씨였다. 성종은 선대왕이던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있었고, 동북형 월산대군이 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왕위 계승 서열 3위였으나 13세의 나이로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된다.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은 8대 왕인 예종의 조카이다. 예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왕실에서는 왕을 세우는 일이 시급해졌다. 당시의 왕위 계승 서열은 첫째가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었고 둘째가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대군이었으며 셋째가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 산군(성종)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다음 보위에 올라야 했으나 제안대군의 나이가 3세밖에 안되었기에 세조의 장남이었던 의경세자의 아들들이 후보 주목.. 2020. 2. 28.
예종의 짧은 재위기간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예종은 형인 의경세자가 비명횡사를 하자 세자에 자린에 오른다. 세조가 사망하고 성인이 되기전인 예종은 어머니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어 승하하기까지의 재위기간은 1년 3개월이 된다 아버지 세조처럼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려 했던 예종은 어지러운 시국에서도 뜻을 펼치려 애를 썼으나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 세조 때 일어난 계유난 이후 형성된 원훈세력(구공신)과 이시애의 난 이후 성장한 세력 신공신의 갈등으로 어지러웠던 시국이였으며 세조가 죽기전 어린왕을 걱정하 여 시행한 원상제 실시로 인해 신하의 권력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원상제란 어린 임금이 즉위했을 때 제상들이 임금을 보좌하는 것을 말한다 이시애의 난으로 세력을 키우게 된 신공신의 세력의 중심엔 남이가.. 2020. 2. 28.
조선 8대 왕 예종 - 이황 예종은 조선 7대 세조의 둘째아들로 출생했다. 세조의 장남이었던 의경세자가 장성한 후에 태어났기에 예종은 왕위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맏형인 의경세자가 요절을 하게 되므로 세자에 자리에 오른게 된 것이다. 예종은 성인이 되기 전인 19세에 왕위에 올랐기에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예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1468년, 19세의 나이였다. 예종은 세자였던 1460년에 11세의 나이로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 한씨를 아내로 맞이한다. 한명회의 딸 한씨의 나이 16세였다. 그리고 혼인을 한 다음해인 1461녕에 아들 인성대군을 낳게 된다. 즉, 12세의 소년이 아버지가 된 것이다. 조선 왕조의 가장 나이에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낳은 장순왕후는 산후병으로 사망을 하고 아들인 의성대.. 2020. 2. 28.
세조의 인간 세조와 그의 업적 세조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왕이였다. 그를 평할때면 '피의군주'라 불리울 정도이니 그가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 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개인적인 인생사를 보면 불행할 따름이였다. 그렇다고 그를 동정 할 수는 없다. 세조 자신의 업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조도 정작 자기 가족과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남자였다고 한다. 세조는 어머니 소현왕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소현왕후 말년에 병으로 자주 피접을 갔는데, 마지막으로 요양한 곳이 바로 둘째 아들인 세조의 개인 사저였을 정도였다. 또한 세조는 무척 애처가였다고 한다. 세조는 왕이 되서도 후궁을 한명밖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세조는 아내 정희왕후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왕이 후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2020. 2. 28.
세조의 일화 이야기들 조선 7대 왕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세조에게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저주를 내렸다는 얘기는 앞서서도 했었다. 세조가 몸에 종기가 생기면서 온몸에 퍼지였는데 그건 꿈에 나타난 현덕왕후가 세조에게 침을 뱉으면서 생겼다는 얘기가 있다. 이로 인해 세조는 매일을 고통속에 살아야 했다. 그런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하였는데 그 중에 상원사에서 치료를 하였다고 한다. 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조, 문수보살을 친견하다 세조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상원사에 기도를 드리고자 오대산을 찾아와 먼저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향했다. 도중에 더위를 식히고자 신하들을 물리치고 청량한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그때 마침 동자승이 지나가기에.. 2020. 2. 28.
세조, 피바람 위에 오른 왕좌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었다. 자기 형제를 죽였으며 자기 조카인 단종의 목숨을 거두었으며 세종이 사랑했던 수 많은 집현전 신하들의 목숨을 거두었으며 무엇보다 문종의 유언을 받은 고명대신인 김종서와 황보인의 죽임으로서 자기 야욕의 시발점을 만들었다. 또한 세조만큼이나 야망가였던 안평대군을 역모로 몰아 주였다. 이런 형에게 반대하던 여섯번째 동생 금성대군은 단종의 복위를 애쓰다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세조가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의 반대파를 모두 제거하는 일이였으며 많은 피를 흘리였던 것이다.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인 금성대군은 형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나선 인물이다. 불온분자로 낙인 찍힌 이후 경상북도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인 순.. 2020. 2. 27.
조선 7대 왕 세조 - 이유 조선 제4대 세종은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휘(諱)는 유(瑈), 자는 수지(粹之), 시호는 혜장(惠莊)이다. 윤번(尹璠)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왕위에 등극하여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되었다. 형인 문종에 비해 학문보다 무예(武藝)에 능하고 병서(兵書)에 밝았으며, 진평대군(晉平大君)·함평대군(咸平大君)·진양대군(晉陽大君)이라 칭하다가 1445년(세종 27)에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홍위(단종)가 즉위하자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단종 재위시인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적이었던 김종서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 2020. 2. 26.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 조선의 6대 왕이였던 단종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누나인 경혜공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종과 6살차인 경혜공주는 단종 못지 않은 기구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당차고 현명했던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문종의 1남 2녀 중 장녀이자 제6대 왕 단종의 친누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다. 경혜공주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문종은 즉위 전이었고, 어머니 권씨는 세자의 후궁으로 품계는 종3품 양원(良媛)이었기 때문에 '현주'로 불리게 되었다. 위로 언니가 있었으나 태어난 지 1년도 못 되어 1433년에 죽었다. 어머니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경혜공주는 현주에서 군주로 승격되고, 세자빈의 거처인 자선당에서 살게 되었다. 이때 그는 평창 .. 2020.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