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639 정종실록 정조실록은 조선왕조 제2대 왕 정종 원년인 1398년 정월부터 정종 2년 11월까지 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원래의 이름은 이고, 모두 6권 1책으로 구성되었다. 세종 6년인 1424년 3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세종 8년인 1426년 8월에 완성하였다. 은 본래의 이름은 이었다. 정종은 세상을 떠난 뒤 묘호를 올리지 아니하였고 명날 황제로부터 받은 시로 공정을 칭호로 하였기 때문에, 실록도 이라 하였다. 숙종 7년인 1681년에 그에게 정종이란 묘호를 추존하면서 실록도 이라 하고 표제만 바꾸었다. 은 세종 8년 8월에 변계량, 윤회, 신장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하였으나 세종 20년인 1438년 9월 25일 중의 제1차 왕자의 난이 소위 방석의 난과 중의 제2차 왕자의 .. 2020. 3. 2. 태조실록의 편찬과 내용 은 태조 원년인 1392년부터 1398년 9월까지 7년 동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다. 모두 15권 3책이며, 처음에는 베껴 쓴 책으로 전해지다가 뒤에 활자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1409년 8월 28일에 태종은 영춘추관사 하륜, 지춘추관사 유관, 동지춘추관사 정이오, 변계량에게 명하여 을 편찬하게 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멀지 아니하고 또 당시에 활동하던 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으므로 실록 찬수가 이르다 하여 후일을 기다리자는 건의도 있었으나 태종은 듣지 않았다. 태종은 태조 원년부터 정종 2년까지의 사로츨 각 사관에게 제출하도록 명령하는 동시에, 하륜 등으로 하여금 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15권이 처음 완료된 것은 태종.. 2020. 3. 1.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야기 조선왕조실록은 이성계가 133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1392년 조선왕조를 창업하여 27대 518년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멸망하기까지 역대 왕들의 실록을 모은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시에 편찬된 사서가 아니라 대대로 편찬한 것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대체로 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다음 왕 때에 임시로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여 전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상례였다. 실록 편찬시 이용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보고한 문서 등을 연월일순으로 정리하여 작성해둔 춘추관 시정기(春秋館時政記)와 전왕 재위시의 사관(史官)들이 각각 작성해둔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승정원일기』·『의정부등록』 등 정부 주요 기관의 기록과 개인 문집 등이었다. 후세에는 『조보(朝報)』·『비변사등록』·.. 2020. 3. 1. 태조 이성계, 무학도사를 만난다 무학도사하면 태조 이성계를 떠올릴 수 있고 정도전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의 기록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무학도사의 법명은 자초(自超), 속성은 박(朴)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陝川郡: 삼기(三岐)) 삼가면에서 출생하였다. 1344년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진주(鎭州) 길상사(吉祥寺)·묘향산 금강굴(金剛窟) 등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하여 그때 원에 와 있던 혜근(惠勤)과 인도승 지공(指空)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고려말 퇴락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이성계를 만나.. 2020. 3. 1. 조선 4대 왕 세종의 가족관계 세종에게는 1명의 왕비와 5명의 후궁이 있었다. 그의 자녀는 18남 4녀로 첫째 아들 문종이 5대 왕이 된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조선 7대 왕이 된다. 왜~~~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7대 왕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그 이야기는 아주 비극적이고 슬픈 사연이 있다. 세종의 뛰어난 왕이 였던 만큼 그의 장남 문종 또한 학식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 밑의 동생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또한 매우 뛰어났던 인물들도 평가가 된다. 그리고 세종은 자식들 모두에게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를 준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 아니였을까 싶다. 소헌왕후 심씨는 1395년에 태어나 1446년에 죽었다.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 심씨는 영의정 심온의 딸이다. 1408년 충녕군 이도와 가례를 올리고 경숙옹주에 봉해졌다. 1.. 2020. 2. 29.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가족관계 태종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 왕자의 난을 두번이나 일으키며 권력을 장악하고 둘째형 정종을 왕위에 올리지만 2년 뒤엔 정종을 상왕에 앉히고 왕이 되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왕비 1명과 후궁 9명 자녀가 12남 17녀가 있었다. 그는 많은 자식 중에 세째아들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다. 원경왕후 민씨는 1365년 태어나서 1420년에 죽었다. 원경왕후 민씨의 본관은 여흥이며,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로서 1365년 여흥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382년 조선왕조가 창건되자 정녕옹주에 봉해졌다. 1400년 2월 방원이 세제에 책봉되자 세자빈으로 정빈에 봉해졌으며, 이 해 11월 방원이 조선 제3대 왕으로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태종보다 두 살 위인 민씨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 2020. 2. 29. 조선 2대왕 정종의 가족관계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 정종응 왕비 1명과 후궁 9명 자녀가 17남 8녀가 있어다고 한다. 재위기간은 2년정도 되지만 그는 상왕으로 물러 난 19년동안 권력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정종은 아내 정안왕후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안왕후와의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다. 고려 말에도 아내 정안왕후 김씨와의 젊은 시절부터의 정 때문에 아내를 더 얻을 수 없다 하여 평생 해로한 애처가이기도 하다. 상왕으로 물러난뒤 태종이 원경왕후 민씨와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 원경왕후에게 후궁 관할권을 빼앗고 후궁을 더 들인다며 수선을 떨자, 상왕 정종이 "금상(현임, 즉 재위 중인 왕)은 어찌하여 다시 장가들려고 하시오? 내 비록 아들이 없어도, 소시(少時)의 정(情)으로 인하여 차마 다시 장가들지 .. 2020. 2. 29. 조선을 건국한 왕 태조의 가족관계 태조는 왕비 2명, 후궁 4명, 자녀 8남 5녀 두었다. 그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의 둘째아들 영안대군이 조선2대 왕인 정종이며, 다섯째 아들 정안대군이 조선 3대 왕인 태종이 된다. 하지만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세자에 올렸던건 그가 사랑했던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 의안대군이었다. 하지만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 이방원. 정안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신의왕후 한씨는 1337년 출생하여 1391년에 사망했다. 태조의 첫째 부인이자 정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본관은 안변으로 밀부사 증영문하부사 한경과 신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성계가 아직 벼슬하지 못하던 때에 결혼하여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고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한씨 소생으로 방우. 방과. 방의. 방간... 2020. 2. 29. 정도전 태조 이성계와 만나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정도전의 자는 종지이고, 호는 삼봉이며 안동 보오하 출신으로 형부상서 정윤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 공민와 9년에 19세로 성균관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점차로 올라 통례문 지후에 이르렀다. 정도전의 집안은 본래 봉화 지역의 향리였다. 고려 시대까지 향리는 우리가 아는 조선조의 향리와는 그 격이 달라, 지방의 토착세력을 말한다. 정도전 집안은 경상도 봉화지역의 토착세력인 셈이다. 정도전은 공민왕의 유학 육성 사업에 참여해 성균관 교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몽주∙이숭인 등도 .. 2020. 2. 29. 이전 1 ··· 65 66 67 68 69 70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