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639 단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6대 왕 단종의 재위기간 1452년 5월 ~1455년 윤 6월의 3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원래 이름은 였으나, 숙종 때 그를 단종으로 추존한 뒤에는 ,단종대왕실록>이라 하였다. 세조 때에 편찬된 원편 는 문종이 세상을 떠난 1452년 5월 14일부터 단종이 양위하기 전날인 1455년 윤 6월 10일까지의 수록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백 4년 만인 숙종 24인 1698년 무인 11월 8일에 영의정 유상운 등의 주처으로 노산군에게 '순정안장경순돈효'라는 시호와 '단종'이라는 묘호, '장릉'이라는 능호를 올리고, 종묘에서 복위 고유제를 올림으로써 왕위를 복구하게 되었다. 의 편찬자들도 를 편찬한 신숙주, 한명회, 최항, 노사신 등 정난공신들이 주축되었을 것이다. 단.. 2020. 3. 5. 문종실록 은 문종 즉위년 1450년 2월 22일부터 문종 2년인 1452년 5월 13일까지 약 2년 4개월간의 역사적 사실을 편텨체로 수록한 사서이다. 정신 이름은 이며, 모두 ㅂ3권6책이었으나 1권은 결본이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단종 원년인 1453년 정월 6일에 황보인 등이 편찬을 청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곧 춘추관에 명하여 문종 대의 공사 기록과 사초를 수납케 하고 편찬을 시작하여 세조 원년 1455년 11월에 편찬을 마쳤다. 다음달 12월 19일에 을 실록각에 봉인하고 수찬관들을 의정부에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은 편찬한 뒤 실록각에 봉이되어 오다가 성종 4년인 1473년 6월 8일 , , 과 함께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의 사대 사고.. 2020. 3. 5. 세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4대 왕 세종의 재위기간인 1418년 8월 ~ 1450년 2월, 31년 7개우러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163권 15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ㅣ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1개월 뒤인 문종 2년인 1452년 3월 22일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단종2년인 1454년 3월에 완성되었는데, 2년 1개월이 걸렸다. 당시 편찬의 총재관은 처음에 황보인. 김종서. 정인지였으나, 단종 원년인 1453년에 일어난 계유정난으로 황보인 . 김종서가 죽임을 당하자, 최후의 감수는 정인지 혼자 담당하였다. 은 그 분량이 방대하므로 처음에는 한 벌만 등초하여 춘추관에 보관하였다. 세조 12년인 1466년에 양성지.. 2020. 3. 4. 태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3대 왕 태종의 원년인 1400년 11월부터 18년(1418) 8월 10일까지의 텩사를 편년체로 기로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한 이며 모두 36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 8년인 1426년 8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세종 13년인 1431년 3월에 완성하였다. 은 쳔찬 직후 세종 13년인 1431년 4월 25일 .과 함께 고려 시대의 실록을 보관하였던 충주 사고에 봉인하였다. 그때까지 실록은 이 한벌뿐이었고, 충주 사고는 민가가 밀집한 시내에 위치하여 화재가 염려되었다. 그리하여 세종 21년인 1439년 6월 사헌부의 건의로 새로 전주와 성주에 시고를 설치하고, 세종 27년인 1445년 11월 19일까지 세벌을 더 베껴 모두 네벌을 만들어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사고에 가기 한.. 2020. 3. 4. 조선 6대왕 단종의 가족관계 단종의 가족관계는 사실 말할만한 내용이 없다. 그에게는 부인이 1명 있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단종은 1453년 13세 때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단종은 송현수의 딸 정순왕후 사이에는 소생이 없었다. 단종은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 달 24일 목을 에어 죽었다. 그는 1681년 숙종7년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에 단종으로 복위되었다. 정순왕수 송씨는 그녀는 세조의 증손이자 단종의 종손뻘인 중종(中宗) 16년인 1521년 7월 7일(음력 6월 4일), 82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중종의 재위 초기, 사림파인 조광조 등에 의해 복위가 주장됐으나 중종은 이를 거부했다. 그 뒤 현종 때부터 송시열과 김수항 등은 단종과 그녀의 복위를 거.. 2020. 3. 3. 태종 이방원 하륜을 만나다. 하륜은 1347(충목왕 3)∼1416(태종 16).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珙辰)의 후예로, 하식(河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식목녹사(拭目錄事) 하시원(河恃源)이고, 아버지는 순흥부사 하윤린(河允潾)이다. 어머니는 증찬성사 강승유(姜承裕)의 딸이다. 1360년(공민왕 9)에 국자감시(國子監試), 1365년에는 문과에 각각 합격하였다. 이인복(李仁復)·이색(李穡)의 제자로, 1367년에 춘추관검열·공봉(供奉)을 거쳐,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으나 신돈(辛旽)의 문객인 양전부사(量田副使)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고공좌랑(考功佐郎)·판도좌랑(版圖佐郎)·교주찰방(交州察訪)·제릉서영(諸陵署令)·지평·전리정랑(典理正.. 2020. 3. 3. 태종 이방원, 외척과 공신을 제거하다. 정비 원경왕후는 조선 초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을 지낸 민제(閔霽)의 딸로서 태종이 등극할 때까지 여장부로서 명석하게 내조를 잘했다. 그런데 왕위에 등극한 뒤 태종은 잉첩(媵妾 : 곁에서 모시는 시녀)들만 가까이하였다. 이에 원경왕후가 투기를 보이자 불화가 잦아지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외척 세력으로서 아버지 민제와 왕비인 원경왕후의 권세를 믿고 활개를 치던 민씨 형제들이 탄핵을 받게 되었다. 즉, 궁중에 들어가 종친에게 무례할 뿐 아니라 종친간에 이간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개국·정사(定社)·좌명(佐命) 등 삼공신의 탄핵을 받게 된 것이다. 1407년(태종 7) 가을 삼공신이 모여 민무구·무질(無疾) 형제를 논죄할 때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박은(朴訔)이 병.. 2020. 3. 3. 성종이 사랑한 여인 폐비윤씨 그리고 비극의 시작 폐비 윤씨는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 왕 연산군의 어머니다. 연산군 때 올린 시호는 제헌왕후(齊獻王后)였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削奪)되었다. 묘호는 회묘(懷墓). 한편으로 폐비 윤씨를 추존된 왕비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미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성종이 책봉한 정실 왕후였기 때문에 이것은 맞지 않다. 추존(追尊)은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 해당 지위에 없었던 인물에게 그 지위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폐비 윤씨의 성종의 사랑을 받은 여인으로 왕후에 오른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지나친 욕심으로 폐위가 되고 사약을 받고 죽기까지 비극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 비극은 그녀가 아들 연산군을 더욱 포악하게 만들게 된다. 성종의 계비로서 폐비가 된 제헌황후 윤씨는 판봉상시사 윤기견과 그의 둘째.. 2020. 3. 3. 조선 5대 왕 문종의 가족관계 조선의 5대왕 문종은 3명의 부인과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문종은 첫번째 아내였던 휘빈 김씨는 질투에 눈이 멀어 온갖 비방을 쓰다가 발각되어 쫓겨나게 된다. 첫째 부인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둘째 아내였던 순빈 봉씨는 궁녀와 동성애를 나눈 것이 발각 되어 쫗겨나게 된다. 둘째 부인에게서도 자녀가 없었다. 세번째 부인은 당시 후궁이였던 권씨였는데 후궁 권씨는 문종과 사이가 무척 좋았기 때문에 세자빈이 되었다. 세자빈 권씨와 문종 사이에서 탄생한 자녀는 1남 1녀로 이들이 바로 조선의 제6대 임금이 되는 단종과 그의누나인 경혜공주이다. 하지만 세자비 권씨는 문종을 낳고 숨을 거두게 된다. 문종이 즉위할 때 정실부인을 맞이하지 않고 즉위를 한다. 문종은 즉위하고 승하하게 되는 재위기간 2년 4개월 동안 정.. 2020. 3. 2. 이전 1 ··· 64 65 66 67 68 69 70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