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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못 한 단종 그리고 그의 설화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는 천연기념물인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유지비각과 금표비가 있는 청령포 쪽을 바라보면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 유난히 우뚝 선 우아한 자태의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다. 나이가 600년이라는 관음송은 생멸(生滅)하는 물체로서는 유일하게 단종의 유배를 지켜 본 존재이다. 곧, 당시 처절하였던 단종의 생활을 보았으니 관(觀)이요, 하염없던 단종의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라는 뜻이다. 두 갈래로 나뉘어진 아래쪽 가지 사이에 걸터 앉아 무료한 시간을 달래었을 어린 노산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457년 여름 청령포에 큰 홍수가 나자 단종의 유배지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 2020. 2. 24.
단종, 유배지에서 죽다 1. 조선의 대 왕 단종을 말할때면 비운의 왕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왕 단종의 험난했던 왕의 길과 소년의 나이 상왕이 되고 상왕의 자리에서 노원군으로 격하되어 유배길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그 유배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 하고 죽어야 했던 짧은 생을 참으로 힘들게 마감했던 그러기에 한없이 가엽은 왕이 아닐 수 없다. 단종과 그 정부인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영도교에서 이별을 한다. 그 다리는 단종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별을 했다 하여 영영이별교가 된다. 여기서부터 금부도사 왕방연은 주민들의 눈을 피해 가까운 한강의 나루터로 가 이천의 천서리까지 배를 이용한다. 거기서 장호원, 원주, 주천, 제천을 거쳐 단 닷새 만에 영월 청령포로 압송한다. 당시 단종의 유배 호송인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영월.. 2020. 2. 23.
단종, 노산군이 되어 유배를 가다 단종은 1455년 6월 11일 3년 1개월의 재위기간을 뒤로하고 숙부인 수양에게 양위한뒤 상왕에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또한 쉬운 길은 아니였다. 아직 십대였던 단종에게는 두렵고 힘든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홍윤성(洪允成) 등은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자 과거에 세종·문종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았던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 등 문관은 무관인 유응부(兪應孚)·성승(成勝)·박쟁(朴崝) 등과 모의, 상왕(上王: 단종)을 복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집현전학사 출신 문관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거사를 모의한.. 2020. 2. 22.
단종, 어린나이에 상왕이 되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의 즉위는 혈헌단신으로 아무도 곁을 지켜주는 이 없이 오르게 된다. 문종이 2년 2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을 마치고 승하게 되는데 이때 어린 세자를 걱정하며 고명대신에게 유언을 남기게 된다.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 어린 것을 염려하여 황보 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한편 집현전(集賢殿)의 학사인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등에게도 좌우협찬(左右協贊)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단종에게 형제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형제들인 숙부들이 있었다. 하지만 숙부였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대단한 야심가 였다. 그런 그들로부터 문종의 유언을 받은 김종서와 황보인등은.. 2020. 2. 21.
조선 6대 왕 단종 - 비운의 왕이 되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1441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른 남자 형제들이 있엇지만 모두 어릴 때 죽었기 때문에 문종의 외동 아들로 성장한다.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가 세자빈 시절 단종을 출산하 지 삼일만에 죽자 아버지 문종이 새로운 정실부인을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 없이 성장한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돌아가시면서 어린 나이에 혈현단시으로 왕위에 즉위를 한다. 단종의 즉위는 비극의 시작이 아닐 수 없었다. 단종은 조선이 건국된 이래 처음으로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지목된 인물이였다. 단종이 태어난 1441년은 할아버지 세종이 임금이자, 아버지 문종이 대리청정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단종은 조선 최초로 안정적인 왕의 길로 즉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단종에게는 어려운 길이기도 .. 2020. 2. 20.
문종, 긴 기다림의 세자로 짧고 찬란한 왕으로.. 조선 5대왕 문종 이향은 1414년에 태아나 1421년 7세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어, 무려 30년 동안 왕세자의 자리에 머물렀다. 아버지 세종와 함께 찬란한 업적에 참여하였으며 세종이 승하하고 왕의 자리에 올라서 2년2개월의 짧은 왕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소홀함이 없는 삶을 살았던 안타까운 왕이기도 하다 문종은 3명의 아내를 두었다. 첫번째 아내 휘빈 김씨는 질투로 인해 온갖 비방을 쓰다 발각되어 쫓겨났으며, 두번째 순빈 봉씨는 궁녀와의 동성애로 인해 쫓겼났다. 세번째로 후궁이였더 권씨가 세자빈에 오르는데 훗날 조선의 6대 왕인 단조오가 그의 누나인 경혜공주를 낳은 현덕왕후 권씨이다. 현덕왕후는 문종이 세잘였던 1441년 아들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녀의 나이가 24세였다. 권씨의.. 2020. 2. 19.
조선의 5대 왕 문종 - 이향 King Munjong of Joseon - Yihyang 문종 이향은 세종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소헌황후 심씨였다. 조선 건국이후 최초의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문종은 30년동안이나 왕세자의 자리에 있었으며 아버지 세종을 도와 국책을 담당하기도 했다. 문종은 오랜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만큼 왕으로써 준비가 되어있던 왕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세종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중에 정실부인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는 총 8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하는데 첫째 아들인 이향은 아버지를 닮아서 성품이 온화하고 몸집 또한 넉넉한 편이었다고 한다. 이향은 1414년에 태어나 1421년 7세에 나이에 세자로 책복되고 이후 30년 동안 왕세자 자리에 머물렀다. 게다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서무결재권을 아들에게 넘겨준다. 세종 19년 세종이 병에 걸려 시력을.. 2020. 2. 18.
세종대왕과 황희 King Sejong and Hwang Hee 조선의 명재상을 꼽을라면 황희를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황희는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활약하뎐 문인으로, 고려말 우왕-창왕-공양왕과 조선초 태조-정조-태종-세종-문종을 섬겼던 사람이기도 하다. 오랜 정치 생활에서도 그에게 유일하게 피곤한 왕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세종이였다. 오랜시간 나리일을 했던 황희의 나이가 90이 되었을 때 세종에게 아뢰기를 " 신의 나이가 90에 가까운데, 공이 없어 녹을 먹으오니 청하옵건대, 신의 직책을 파하여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소서"하니 세종은 이에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이 22세에 즉위할 당시 황희의 나이가 이미 56세였다고 한다. 환갑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에 세종에게 아뢰기를 "지극히 노쇠하여 귀먹고 잊음이 많아서 듣고 살피기가 이미 어렵사온데, 늙은 .. 2020. 2. 17.
세종이 남긴 일화들 anecdotes left by King Sejong 세종이 재위한 31년의 기간동안 많은 일화가 있다. 그가 업적을 이루면서 생겼던 일화들은 그의 업적의 수만큼 많지 않을까한다. 세종의 이야기를 할 때면 놓치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적어 본다. 세종이 여러가지 제도들을 만들 수 있었던건 집현전 학자들의 공이 매우 컸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려 하면 신하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당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세종은 이들을 매우 아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일화가 있다 ' 어느 늦은 밤, 세종은 내관을 시켜 숙직하는 학사가 무엇을 하는지 엿보고 오도록 했다. 그날 밤 숙직을 맡은 이는 신숙주였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오직 학문에만 전념한 인물이었다... 2020.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