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님의 여행 이야기

남한 산성 길을 걷다.

by 무님 2020. 10. 18.
728x90

광주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쪽의 방어기지이다. 서쪽의 청량산과 북쪽의 연주봉·동쪽의 망월봉·벌봉 등을 연결하여 쌓은 대규모의 석축산성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남한산성은 672년(문무왕 12) 신라가 당의 침공에 대비하여 쌓은 주장성이라 한다. 주장성은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입 시에도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다는 기록도 보이고 있다. 현재의 남한산성에 대한 수축 논의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이괄의 난과 청의 군사적 위협이 전개되면서 1624년(인조 2)에 수축되어 인조 4년에 완성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도 1638년(인조 16) 대대적인 증·개축이 이루어졌고 1685년(숙종 11)에는 봉암성을 신축하였다. 1693년에는 병자호란 때 청군의 공격 때 방어 상의 취약점으로 드러난 동쪽 지역에 한봉성을 신축하여 취약점을 보완하였다. 1753년(영조 11) 신남성 돈대가 구축되었으며, 1779년(정조 3) 남한산성에 대한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성 내에 있던 많은 사찰과 건물들이 훼손되었다.

 

 

광주 남한산성

 

남한산은 남한산성은 한강을 접한 전략적 중요성을 두루 갖는 곳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럽던 병자호란의 상처를 담고 있으며 천주교인 박해 사건과 군사정권 시절엔 육군 교도소가 들어서기도 했던 수 많은 역사의 순간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말끔하게 복원되어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 10여분 가면 남한산성 입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한천약수터까지는 골목과 고개를 넘어 4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약수터에서부터 가파른 경사를 30분쯤 오르면 삼성 삼거리에 닿게 된다.

 

남한천약수               와             산성 삼거리 등상로 입구

 

삼거리에서 산성을 바라보면 작은 구멍이 보이는데 이를 지나며 등산을 시작하게 된다. 

산성길을 따라 걸어 오르다 보면 청량산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를 만나게 된다. 수어장대는 조선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축조된 동·서·남·북의 4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대로 산성 내 최고봉인 일장산성(해발 453m)에 위치하고 있어 성내와 인근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및 서울, 인천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당초에는 단층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라 불리었으며 남한산성의 수어를 맡았던 수어청(전, 좌, 우, 중, 후의 5관이 소속되었음) 중 우영장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청태종의 13만 대군과 대항하여 45일간을 항전하던 곳으로 영조 27년(1751)에는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건립하고 외부 편액은 수어장대, 내부편액은 무망루라 이름하였다.
무망루라 함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인조의 아들인 효종이 볼모로 심양(현 봉천)에 잡혀 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하여 항상 청국에 대한 복수심으로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원한을 후세에 전하고 그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영조, 정조가 효종의 능소인 여주 영릉에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장대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면서 병자호란 때의 치욕사를 되새겼다고 전한다.

 

 

수어장대

 

수어장대에서 서문으로 가는 길은 성곽길은 소나무숲 사이의 시원하게 뻗은 길로 걷는 맛과 보는 맛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 서문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러 나갔던 문이다. 성문이 낮아 머리를 숙여야 했고, 길이 가팔라 말에서 조차 내려야 했다고 하니 우리의 왕이 겪어야 했을 치욕에 가슴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서문을 지나면 암문이 나오고 암문을 나오면 연주봉옹성이 나온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해 돌출된 방어시설이다. 연주봉옹성 정상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문          과           연주봉옹성

 

 

장대암문에서 벌봉으로 이어진 길은 남한산성에서 손꼽을 만한 길이다. 호젓하고 운치 있어 걷는 내내 하늘을 보면 사색하기에 좋다. 옆으로 허물어져 내린 성벽의 쓸쓸한 분위기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벌봉

 

벌봉의 정상에는 남한산에서 가장 큰 바위가 있는데 이 위에 올라서면 한강과 그 너머의 검단산까지 시원하게 볼 수 있다. 병자호란때 청 태종은 조선의 저기가 이 바위에 서려 있음을 간파하고, 즉시 깨뜨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바위 가운데가 갈라져 있다. 하산하는 길은 동장대문으로 돌아와 15분쯤 내려가면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는데 이 암문 밖으로 장경사신지옹성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제법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면 장경사를 지나게 되고, 동문 아래에서 도로를 만나면서 산행을 마칠 수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