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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서울을 지키는 호랑이산 < 인왕산 >

by 무님 202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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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 중 하나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 남산()을 안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라는 불교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 필운동, 누상동, 옥인동, 신교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산허리에 자하문고개를 통해 북악산()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다.

 

 

인왕산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여섯 개의 산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인왕산이다. 특히 기차바위는  서울시의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여 '서울의 전망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등산 코스는 창의문에서 시작해 기차바위를 둘러보고 정상을 거쳐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창의문은 북악산과 인왕ㅇ산의 접점으로 두 산의 들머리가 된다. 청안공원 안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윤동주는 1947년 무렵에 인왕산 아래 누상동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대표작인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썼다고 한다. 그런 인연을 이곳에 시비가 세워졌다. 인왕산길 옆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200m쯤 따르다 보면 정상의 거리가 적혀있는  팻말을 만난다. 그 길을 따르면 곧 성곽이 나타난다. 제법 가파른 성곽 길을 20분쯤 오르면 능선 삼거리에 올라 붙는다. 이곳에서 기차 바위로 가려면 경창 초소 아래의 철계단을 찾아야 한다. 철계단을 내려오면 기차바위의 이정표가 보인다.

 

창의문    과    기차바위

 

이정표를 지나 30m쯤가면 널찍한 암반이 나오는데 이곳 지나면 기차바위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조망 하기를 추천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멋지다. 인왕산 정상으로 가려면 능선 삼거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삼거리에서 남쪽 능선을 따르면 말끔히 보수된 성곽 길이 이어지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을 만나게 된다. 

이 철계단을 올르면 동쪽면의 우람한 바위가 보이는데, 이곳이 치마바위이다. 

 

 

치마바위

 

치마바위에는 애절한 전설이 있다.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즉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진성대군()이 중종이 되자 그 부인 신씨()는 친정아버지 신수근()이 반정 때 피살되었는데 반정을 주도해온 박원종() 등이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 하며 반대하자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 거처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중종은 부인을 잊을 수 없어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하였으며, 신씨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음으로써 간절한 뜻을 보였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또 중종이 사직단에 나올 때에는 언제나 말죽을 쑤어 주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옥인동에 있는 인왕산 중턱 병풍바위 앞에 우뚝 솟은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한다.

 

치마바위 정산에는 작은 바위 하나가 도드라져 있다. 삿갓을 벗은 모양이라 해서 삿갓바위라고 한다. 인왕산을 등반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삿갓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하산은 계속 남쪽 능선을 따르면 된다. 급경사 계단을 내려오면 안내판 앞에서 인왕천약수터로 내려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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