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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장원 급제를 기원하며 걷던 길 < 문경새재 길 >

by 무님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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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申砬) 장군, 동학(東學)과 의병(義兵)이 남긴 사담(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문경새재

 

 

문경에는 옛길이 많다. 좃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로서 조선 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가 있고 우리나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인 '하늘재' 그리고 고려 태조 왕건의 발자취가 서린 '토끼비리'가 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매표소에서 제1관문인 주흘관 끼지는 500m, 여기에서 제2관문인 조곡관까지는 약 3km이고, 제3관문 문 조령관까지는 약 3.5km 이며, 이들을 합하면 편도 7km에 이른다. 여행 일정을 고려해서 제3관문까지 왕복을 해도 좋으나

어느 관문이든 원하는 거리를 선택하여 가볍게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제1관문을 지나 조금만 오르면 외편에 왕궁, 양반집, 초가집 등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 드라마 촬영장이 보인다. 촬영장 입구에서 제2관문까지는 맨발 지압로, 폭포동, 조령원터, 주막, 교구정, 예배굴, 산불조심 비, 조곡폭포, 소원성취 탑 등이

연이어 나온다. 조령원은 이곳을 지나던 길손들이 하룻밤 묵어가며 요기를 하고 물물을 교환하던 곳이고 교구정은 신구 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곳이다. 근래 만든 인공폭포인 조곡폭포를 지나 청정한 계곡물을 건너면 제2관문인 조곡관이  나온다.

 

 

문경 드라마세트장    과    조령원     그리고     조령폭포

 

제1관문과 제3관문이 조선 숙종 34년인 1708년에 세워진 반면, 제2관문은 이보다 앞서 임진왜란 직후인 선도 27년인 1594년에 설치됐다. 조곡관에서 조령관까지 걷는 동안 '문경새재 아리랑비'도 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 신립 장군이 농민군의 제2진을 설치했던 '이진터'도 지나다. 이진터를 지나 지점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동화원을 거쳐도 좋고 박성이 깔린 장원급제 길을 타도 좋다. 그렇게 걸어가면 제3관문인 조령관에 닿는다. 

 

 

제3관문 조령관

 

조곡관을 지나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도도 조금은 심해지고 통행자도 적어 매운 한적하다. 그러나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비가 온 뒤에는 길을 메우고 눈이 온 다음에는 제설 작업을 하는 등 관리를 잘해놓아 어느 계절에 가도 걷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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