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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물 사전

선조 시대 관련 인물

by 무님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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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우옹 - 조선시대 병조참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경상북도 성주() 출신. 본관은 의성(). 자는 숙부(), 호는 동강()·직봉포의(). 아버지는 삼척부사김희삼()이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진사가 되고, 1567년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않았다. 1573년(선조 6)홍문관정자가 되고, 이어서 수찬·부수찬을 거쳐 다시 수찬이 되었으나, 이두문()을 가르치는 책임자로서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지 못한 데 대한 문책을 받아 전적으로 좌천되었다. 1576년 부교리가 되고, 이어서 이조좌랑·사인 등을 지냈으며, 1579년에는 부응교가 되어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다. 그 해 사가독서(: 휴가를 얻어 독서에 전념)하도록 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양하였다. 이듬 해 선위사(使)로 일본 사신 겐소[]를 맞이하여 사신의 접대에 여악()을 금지하도록 진언하였다. 1582년홍문관직제학이 되고, 이어서 대사성·대사간을 거쳤으며, 1584년부제학이 된 뒤 전라도관찰사·안동부사를 역임하였다.

1589년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정여립(鄭汝立)과 함께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이유로 회령에 유배되었다가, 1592년임진왜란으로 사면되어 의주 행재소()로 가서 승문원제조로 기용되고, 이어서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듬 해명나라 찬획() 원황()의 접반사(使)가 되고, 이어서 동지중추부사로 명나라의 경략() 송응창()을 위한 문위사(使)가 되었으며, 왕의 편지를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게 전하였다.

그 해상호군을 거쳐 동지의금부사가 되어 왕을 호종하고 서울로 환도하였으며, 한성부좌윤·혜민서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1594년대사성이 되고, 이어서 대사헌·이조참판을 거쳤다. 1597년 다시 대사성이 되었으며, 이어서 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599년 사직하고 인천에서 한거하다 이듬 해 청주로 옮겨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경연에서 자주 학문적 문제와 정치에 시책을 진언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573년에는 경연에서 요순우탕()의 심법()을 역설하며 유교적 정치 이념과 위정자의 정치 도의를 밝히는 한편, 주경공부()를 논하여 왕의 정신 수양의 원리를 강조하였다.

이 때 왕명에 따라 「성학육잠()」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정지()·강학()·경신()·극기()·친군자()·원소인() 등으로 되어 있다. 또한 송나라의 학자 장식()과 명나라의 학자 설선()의 문집을 간행할 것을 청하여 이를 실현시켰다. 대사성으로 있을 때에는 학령()·독법()·치경행재(經行)·택사유()·선생도()·공사()·취사()의 「학제칠조()」를 지었다.

선학을 존경하여 1573년 이황(李滉)에게 시호를 내릴 것을 청했으며, 이듬 해에는 조광조(趙光祖)를 제향한 양주의 도봉서원()에 사액을 내릴 것을 청하였다. 1579년에는 이이(李珥)를 비난하는 정언송응형(宋應泂)에 맞서 이이의 입장을 두둔하였다. 또한 널리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하여 1574년에는 정구(鄭逑)를 천거하고, 1595년에는 곽재우(郭再祐) 등 33인을 천거하였다.

관직 생활 동안 수시로 시무책을 올렸는데, 1594년 6월「시무칠조」, 7월에 「시무사조」, 9월에 「시무팔조」, 이듬 해「시무십육조」, 1597년에는 여지()·택상()·택장()·임관()·연병()·적량()·신상()·필벌()의 「중흥요무팔조()」를 올렸다.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가까워 정치적으로도 이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동인()에 속하였다. 그래서 서인인 정철(鄭澈)·이경률()·이징() 등이 쟁단을 일으키려 한다 하여 파직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이에 대해서만큼은 존경의 태도를 취하였다.

저서로는 『동강집()』·『속자치통감강목()』 등이 있으며, 편서로는 『경연강의(經筵講義)』가 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청주의 봉계서원(鳳溪書院),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청천서원(), 회령의 향사()에 제향되었다. 1661년(현종 2) 문집이 간행되었으며, 1723년(경종 3)이현일(李玄逸)이 지은 신도비가 세워졌다. 시호는 문정()이다.

 

 

김우옹 신도비

 

 

2. 김천일 - 조선시대 수원부사를 역임한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 호는 건재(). 나주 출신. 할아버지는 주부 김윤손()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이며, 어머니는 양성 이씨()로 부위() 이감()의 딸이다. 이항()의 문인으로, 김인후()·유희춘() 등과 교유하였다.

1573년(선조 6) 학행()으로 발탁되어 처음 군기시주부(簿)가 된 뒤 용안현감()과 강원도·경상도의 도사를 역임하였다. 지평() 때에 소를 올려 시폐를 적극 논란하다가 좌천되어 임실현감이 되었다. 그 뒤 담양부사·한성부서윤·수원부사를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적의 대군이 북상해 서울이 함락되고 국왕이 서행(西)했다는 소식에 접하자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글을 보내 창의기병()할 것을 제의하는 한편, 담양에서 고경명 등과도 협의하였다. 그 뒤 나주에서 송제민()·양산숙()·박환() 등과 함께 의병의 기치를 들고 의병 300명을 모아 북쪽으로 출병하였다.

한편, 공주에서 조헌()과 호서 지방 의병에 관해 협의하고는 곧 수원에 도착하였다. 북상할 때 수원의 연도에서 스스로 의병에 참가한 자와 또 호서 방면에서 모집한 숫자가 크게 늘어나자 군세는 사기를 떨쳤다.

수원의 독성산성(禿)을 거점으로 본격적인 군사 활동을 전개, 유격전으로 개가를 올렸다. 특히, 금령전투()에서는 일시에 적 15명을 참살하고 많은 전리품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8월 전라병사에 최원()의 관군과 함께 강화도로 진을 옮겼다. 이 무렵 조정으로부터 창의사(使)라는 군호()를 받고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었다.

강화도에 진을 옮긴 뒤 강화부사·전라병사와 협력해 연안에 방책()을 쌓고 병선을 수리해 전투 태세를 재정비하였다. 강화도는 당시 조정의 명령을 호남·호서에 전달할 수 있는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9월에는 통천()·양천() 지구의 의병까지 지휘했고 매일같이 강화 연안의 적군을 공격했으며, 양천·김포 등지의 왜군을 패주시켰다. 한편, 전라병사·경기수사·충청병사, 추의병장() 우성전() 등의 관군 및 의병과 합세해 양화도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또한, 일본군의 원릉() 도굴 행위도 막아 이를 봉위하기도 하였다.

다음 해인 1593년 정월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수복, 개성으로 진격할 때 이들의 작전을 도왔으며, 명·일간에 강화가 제기되자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이 수복되어 굶주리는 자가 속출하자 배로 쌀 1,000석을 공급해 구휼하였다.

전투에서도 경기수사·충청수사와 함께 선유봉() 및 사현전투()에서 다수의 적을 참살, 생포하고 2월에는 권율()의 행주산성 전투에 강화도로부터 출진해 참가하였다. 이들 의병은 강화도를 중심으로 장기간의 전투에서 400여 명의 적을 참살하는 전공을 세웠다.

1593년 4월 왜군이 서울에서 철수하자 이를 추격, 상주를 거쳐 함안에 이르렀다. 이 때 명·일강화가 추진 중인데도 불구하고 남하한 적군의 주력은 경상도 밀양 부근에 집결, 동래·김해 등지의 군사와 합세해 1차 진주싸움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한 진주성 공격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에 6월 14일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입성하자 여기에 다시 관군과 의병이 모여들었다. 합세한 관군·의병의 주장인 도절제()가 되어 항전 태세를 갖추었다.

10만에 가까운 적의 대군이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대공세를 감행하자 아군은 중과부적임에도 분전했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아들 김상건()과 함께 촉석루에서 남강()에 몸을 던져 순사하였다.

1603년(선조 36) 좌찬성에 추증되고, 이어 1618년(광해군 10)에 영의정이 더 내려졌다. 나주의 정렬사(), 진주의 창렬사(), 순창의 화산서원(), 태인의 남고서원(), 임실의 학정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건재집()』이 있다. 시호는 문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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