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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태조, 하륜를 만나다

by 무님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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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조선 초 이방원을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하였고 왕권강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공헌하였다. 이첨과 함께《동국사략()》을 편수하였다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 호는 호정(). 하공진()의 후예로, 하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식목녹사() 하시원()이고, 아버지는 순흥부사 하윤린()이다. 어머니는 증찬성사 강승유()의 딸이다.

 

1360년(공민왕 9)에 국자감시(), 1365년에는 문과에 각각 합격하였다. 이인복()·이색()의 제자로, 1367년에 춘추관검열·공봉()을 거쳐, 감찰규정()이 되었으나 신돈()의 문객인 양전부사(使)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고공좌랑()·판도좌랑()·교주찰방()·제릉서영()·지평·전리정랑()·전교부령지제교()·전의부령()·전법총랑()·보문각직제학·판도총랑()·교주도안렴사(使)·전리총랑()·전교영()·대사성 등의 관직을 거치고, 1380년(우왕 6)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

3년 상을 마친 뒤 우부대언·우대언·전리판서·밀직제학을 거쳐, 1385년에 명나라사신 주탁() 등을 서북면에서 영접하는 일을 맡았다. 1388년최영()이 요동()을 공격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양주로 유배되었으나(『태종실록』「하륜 졸기」에 나오는 내용임. 반면,『고려사절요』·『동국통감』등에서는 하륜이 이인임의 인척이었다는 이유로 최영에 의해 양주에 유배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음), 위화도회군 이후로 복관되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영흥군왕환()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그가 가짜임을 밝혔다가 오히려 광주()·울주 등지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윤이()·이초()의 변이 일어나자 의혹이 풀려 1391년(공양왕 3)에 전라도도순찰사가 되었다가 조선이 건국되자 경기좌도관찰출척사가 되어 부역제도를 개편,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하였다.

또한, 신도()를 계룡산으로 정하는 것을 반대, 중지시켰다. 1394년(태조 3)에 첨서중추원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

그러나 곧 기복()되어 예문춘추관학사가 되었는데, 때마침 명나라와의 표전문() 시비가 일어나자 명나라의 요구대로 정도전()을 보낼 것을 주장하고 스스로 명나라에 들어가 일의 전말을 상세히 보고, 납득을 시키고 돌아왔다.

그러나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는데, 그 때 항왜()를 도망치게 했다 하여 수원부에 안치되었다가 얼마 뒤 충청도도순찰사가 되었다.

그는 이방원()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 1등이 되고 정당문학()으로서 진산군()에 피봉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명나라 태조가 죽자 진위 겸 진향사(使)로 명나라에 가서 정종의 왕위계승을 승인받아 귀국, 참찬문하부사·찬성사·판의흥삼군부사 겸 판상서사사·문하우정승()을 거쳐 진산백()으로 봉해졌다.

이 해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 1등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했다가 영삼사사()로서 지공거()가 되고 관제를 개혁하였다. 그리고 영사평부사 겸 판호조사()로서 저화()를 유통시키게 하였다.

1402년(태종 2)에 의정부좌정승 판이조사()로서 등극사(使)가 되어 명나라 성제()의 즉위를 축하하고 조선의 고명인장()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1405년에는 좌정승 세자사()가 되고, 다음 해에는 중시독권관()이 되어 변계량() 등 10인을 뽑았다. 그 뒤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역임하고 1416년에 70세로 치사(), 진산부원군()이 되었다.

그는 태종의 우익으로 인사 청탁을 많이 받고 통진 고양포()의 간척지 200여 섬 지기를 농장으로 착복,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공신이라 하여 묵인되었다. 치사한 뒤에도 노구를 이끌고 함경도의 능침()을 돌아보던 중, 정평군아()에서 죽었다. 인품이 중후, 침착, 대범하였다.

저서로 문집 『호정집()』 약간권이 있다. 태종의 묘정()에 봉안되었다. 후대에 그를 한나라의 장자방(: ), 송나라의 치규()라 일컫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충()이다.

 

하륜의 묘

 

하륜의 묘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산166ㅡ45 있으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441번지에 있는 하륜()의 부조묘가 있다. 부조묘란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을 말한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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