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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3

사랑의 증표 < 창덕궁 낙선재 > 창덕궁에 자리한 낙선재는 창덕궁 인정전의 동남쪽,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 잡은 건물로, 1847년(헌종 13) 건립되었다. ‘낙선(樂善; 선을 즐김)’이라는 명칭은 ‘인의충신(仁義忠信)으로 선을 즐기고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천작(天爵; 하늘이 내린 벼슬)이다’라는 《맹자》의 구절로부터 비롯되었다. 낙선재 오른쪽으로 1848년 헌종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처소로 건립된 석복헌과 1848년 중수된 수강재가 옆으로 길게 이어지며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어 이 일곽을 통틀어 낙선재라 부르기도 한다. 각 건물 사이에 행랑과 담을 설치하여 공간을 독립적으로 구성하였다. 세 건물 뒤쪽으로 화초·석물·꽃담·굴뚝 등으로 꾸민 아름다운 후원이 있고,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 등의 정자가 있다. 낙선재는 왕.. 2020. 10. 19.
짧지만 찬란했던 헌종 사랑 < 경빈 김씨 > 헌종이 짧지만 찬란하게 사랑했던 주인공은 경빈김씨이다. 경빈 김씨는 광산 김씨이며, 아버지는 김재청(金在淸), 어머니는 평산 신씨, 외할아버지는 신명하(申命河)이다. 헌종의 첫 왕비인 효현왕후가 죽자, 새로운 왕비를 뽑기 위한 간택 절차가 시작되었다. 이때 김씨도 참여했는데, 헌종은 김씨를 좋아했으나 왕실 어른들은 홍씨가 더 마음에 들었다. 당시 결혼이란 당사자보다 어른들의 뜻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었기에, 결국 홍씨가 계비(효정왕후)로 정해졌다. 대신 김씨는 헌종의 후궁이 되어 입궁했고, 경빈으로 책봉되었다. 이때 김씨는 수빈 박씨의 예를 그대로 이어받아 무품입궐빈이었다고 한다. 헌종은 경빈 김씨를 총애했고, 그녀를 위해 창덕궁에 낙선재(樂善齋)와 석복헌(錫福軒)을 지었다고 한다. 이는 정조와 수빈 박씨.. 2020. 10. 16.
일생을 당쟁으로 살던 < 고산 윤선도 > 윤선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인이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윤선도는 서울 출생.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惟深)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기(惟幾)의 양자이다. 8세 때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살았다. 당시 금서(禁書)였던 『소학(小學)』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18세에 진사초시(進士初試)에 합격하고, 20세에 승보시(陞補試: 성균관 유생에게 시행하던 시험)에 1등을 했으며 향시(鄕試)와 진사시(進士.. 2020.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