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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 강씨2

김자점, 인조반정의 공신? 나라의 역적!! 김자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이귀 등과 인조반정을 성공시켰으며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 등 사림세력의 등용으로 북벌론이 대두되자 위협을 느끼고, 청나라에 누설하였다. 이후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익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처형되었다. 본관 안동. 자 성지(成之). 호 낙서(洛西). 성혼(成渾)의 문인. 성삼문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동지를 배반하고 세조에게 고해바친 김질(金礩)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김억령이다. 음보로 출사해 병조좌랑에까지 이르렀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논의에 반대하는 등 광해군 때에 대북 세력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축출당하였다. 처음에 최명길(崔鳴吉)·심기원(沈器遠)과 함께, 사돈 관계에 있는 이귀(李貴)를 중심으로 반정을 모의하던 중.. 2020. 6. 3.
인조의 며느리, 소현세자의 비 민회빈 강씨 민회빈 강씨는 본관 금천(衿川).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이다. 1627년(인조 5) 가례(嘉禮)를 올려 소현세자빈이 되었다. 병자호란 뒤인 1637년 세자와 함께 인질로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5년 귀국하였다. 1627년,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는 강석기의 딸을 최종 세자빈으로 간택하여 세자와 가례를 올렸다. 사실 강씨는 본래 세자빈이 되지 못했을수도 있었다. 그녀가 간택되기 2년 전, 소현세자는 파평 윤씨 가문의 딸과 혼인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규수는 이괄의 난에 가담한 윤인발과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대간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결국 파혼당해 내쳐지게 되었다. 이후 소현세자의 혼례가 무산된 지 2년 만에 다시 간택을 거쳐 뽑힌 여인이 강빈이다. 이후 병자호란의 패배와 정축하.. 202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