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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량2

태조 시대 관련 인물 1 1. 김한로 - 1358년(공민왕 7)∼?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광산군(光山君)김자빈(金子贇)이고,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장인이다. 1383년(우왕 9) 문과에서 장원급제해 예의좌랑(禮儀佐郎)을 지냈다. 조선 개국 후 태종과 동방(同榜)이라는 인연으로 태종의 우대를 받았다. 1401년(태종 1)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로서 의순고별좌(義順庫別坐)가 되었을 때, 태상왕(太上王: 태조)이 명나라 사신을 위해 베푼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역리(驛吏)의 말을 빼앗아 쓴 사건으로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파면되었다. 1404년(태종 4) 이조전서(吏曹典書)가 되었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명나라 체재 중 상업 행위를 한 사건이 탄로.. 2020. 8. 3.
안하무인의 표본 대제학 변계량 변계량의 자는 거경, 호는 춘정이다. 목은 이색의 제자로, 14세에 진사, 15세에 생원, 17세에 문과에 급제한 수재였다. 고려조에서 진덕박사 등을 지냈고, 조선조에 들어와 주로 태종 때에 활약했다. 벼슬이 대제학을 거쳐 우군도종제부사에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나 문명이 높았고, 시조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성품이 인색하기로 좆정의 비판이 자심했다. 변계량은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남에게 절대로 빌려주지 않았다. 그는 동과를 즐겨 먹었다. 동과는 동아라고도 하는데, 한방에서 그 씨를 약재로도 썼다. 오줌을 잘 나오게 하며, 부증, 소갈증 등에 쓰였다. 변계량은 소갈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동과를 잘라먹은 뒤 자른 자리에 꼭 표를 해두었다.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뿐만이.. 2020.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