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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13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맏아들이다.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세자로 회자되는 인물인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사도세자와 함께 왕세자였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소현세자와 관련한 가장 큰 의혹은 바로 그의 죽음에 있다. 그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1612년(광해군 4) 1월 4일 인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부친이 왕위에 오르자 14세의 나이로 세자로 책봉되었고, 1627년 강석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병자호란 후 정축맹약에 따라 1637년(인조 15) 2월 8일 아우인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하였지만,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하였다. 오한이 나 병을 치.. 2020. 5. 22.
인조시대 정묘왜란이 일어나다 조선 인조 때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후금은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쳐들어왔다가 조선과 협상을 벌인 뒤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두 나라는 이 전쟁을 계기로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고 9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의 배경을 살펴보면 광해군때부터 살펴봐야 한다. 1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약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2020. 5. 19.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시대 이른바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난 왕은 노산군(뒤에 단종), 연산군, 광해군 등 세 명이었다. 이 가운데 ‘반정(反正)’ 즉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왕이 교체된 것은 연산군을 폐한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폐한 인조반정이다. 그런데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왕위에 오른 과정을 보면 중종과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기간 1623~1649)는 아주 달랐다. 중종이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로 갑자기 왕위에 올랐다면, 인조는 왕이 되고자 몸소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인물이다. 인조는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이다.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 2020. 5. 18.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인조는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인조는 반정이라는 거사를 직접 진두지휘 하였다. 인조는 계획이 여러 사람들 입을 통해 누설될 위기에 처해지자 서두를 수 밖에 없었고 조바심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인조는 예정일 보다 일찍 반정을 일으켰고 이런 탓에 치밀하지도 못한 느낌이지만, 군왕이었던 광해군은 무방비 상태였다. 광해군이 도망간 이상, 인조는 왕위에 오른 것이나 진배없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 2020.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