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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14

임진왜란의 종결과 조선의 상황 임진왜란은 7년간의 왜란은 끝났으나 이 전쟁이 조선·명·일본 등 삼국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조선은 연산군 이후 문란하기 시작한 사회가 난을 계기로 완전히 붕괴되어 경제적 파탄과 관료 기구의 부패로 나타났다.전화(戰禍)에 따른 인명의 손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국적으로 전야(田野)가 황폐화되었다. 사회적으로는 군공이나 납속으로 서얼허통(庶孽許通), 향리(鄕吏)의 동반직(東班職) 취임, 병사의 면역, 노비의 방량(放良) 등 신분상의 제약이 해이해져갔다. 문화재의 손실도 막심하여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위시한 많은 건축물과 서적·미술품 등이 소실되고 약탈되었다. 역대 실록을 포함하여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한 사고(史庫)도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난중의 민중의 생활은 더욱 궁핍하여 인상.. 2020. 3. 21.
조선 14대 왕 선조 - 정유재란 조선 14대 왕 선조 시대에는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특히 왜의 침입인 임진왜란은 내외적으로 혼란하고 전쟁에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치열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잠시 휴정에 들어가지만 일본 다시 침략해 온다.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정유년에 일어난 왜의 침입일하여 정유재란이라 한다. 1597년 화의 결렬로 일본의 도요토미는 재침의 명령을 내렸다. 먼저 가토·고니시·소 등을 장수로 한 1만 4500명의 군사를 선봉으로 정월 15일 조선을 침략하였다. 가토는 울산·죽도의 구루(舊壘)를 수축하고 부산의 수병(戍兵)을 합하여 잠시 기장에 주둔했다가 이어 양산을 거쳐 울산 서생포에 들어가 둔진하였다. 고니시는 앞서 지난해 말에 두모포(豆毛浦)로 상륙하여 2월에 부산의 원영(原營)을 수복하고 영주.. 2020. 3. 21.
임진왜란의 휴전 성립 앞서 선조는 피난 도중에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파병 여부의 의논이 분분했으나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주장으로 원병을 파견하였다. 이에 요양부총병(遼陽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은 5,000의 병사를 이끌 고 고니시의 본거지인 평양성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들 원병은 명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군사는 아니고 국경 수비병이었다. 그들은 1592년 7월 15일 평양에 도착하여 풍우가 심한 밤을 이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적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고, 우참장(右參將) 대조변(戴朝弁)과 유격(遊擊) 사유(史儒) 등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조승훈이 잔여병을 거두어 퇴각하니 1차 구원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보다 앞서 고니시는 임진강에서 대진하고 있을 때와 대동강에 이르러 두.. 2020. 3. 21.
임진왜란의 발발 조선은 일본의 태도를 심상치 않게 여기고 1590년 동인의 김성일과 서인의 황윤길을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한다. 그리고 이들은 1년 뒤인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에 선종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일을 보고한다. 그런데 문제는 김성일과 황윤길인 상반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 상이 하문하기를 "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어썽헤 생겼던가?" 하니, 윤길이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였습니다." 하고, 성일은 아뢰기를 "그이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선의 앞날의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은 김성일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이는 누구도 전쟁에 대한 중압감과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고 또한 민심이 나빠질가 걱정.. 2020. 3. 21.
조선 14대 왕 선조 - 이균, 이연... 방계출신이 왕이되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는 1552년에 태어나 1608년에 사망했다. 그의 재위기간은 40년 7개월이다. 선조는 조선 11대 중종의 손자로,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으로 인종, 명종과는 이복형제 사이이다. 명종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왕이 되었는니, 조선 최초로 방계 출신의 임금이기도 하다. 본래 이름은 '균'이었으나. 당시 중국 명나라 황제의 이름이 '주익균'이었기 때문에, '연'으로 개명한다. 그가 재위하던 시기에 조선 왕조를 뒤흔든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선조의 시호는 소경(昭敬)이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초(岹)의 셋째 아들이니 즉 중종의 손자(셋째 아들 계)이다(중종의 첫째 아들은 12대 인종, 둘째 아들은 13대 명종). 어머니는 영의정.. 2020.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