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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3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동구릉 3편 - 목릉> 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을 소개합니다. 동구릉 3편에서는 선조와 그의 비인 인목왕후와의 의인왕후가 잠든 을 소개하려 한다. 동구릉의 입구를 들어서면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은 신성 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 워둔 문으로 왕릉을 들어서는 초입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현릉에서 건원릉으로 향하는 길 사이 산속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건원릉 바로 옆의 작은 산길이라 슬쩍 보면 넘길 수 있는 그 길이 목릉으로 오르는 길이다. 은 조선 14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와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목릉은 같은 능역 안에 각각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서한 동원이강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선조, 가운데 언덕이 인의 왕후, 오른쪽 언덕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2020. 9. 2.
광해군 - 인목대비 폐하다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왕비. 계비이다.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 생모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폐위되는 불운에 처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시 인조반정으로 명예를 회복한 대비는 바로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를 지칭하는 말이다. 19세의 나이로 51세의 선조에게 시집을 와서 선조가 그토록 바랐던 아들 영창대군을 낳았지만, 영창대군은 그녀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주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인목왕후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김제남(金悌男)의 딸로, 1584년(선조 17)에 태어나 1602년(선조 35) 선조의 계비(繼妃)가 되었다. 당시 인목왕후의 나이는 19세, 선조의 나이는 51세로, 당시까지는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왕과 계비였다. 선조는 의인왕후 사.. 2020. 5. 9.
조선 15대 왕 광해군 - 폐모살제 그리고 인조반정 임진왜란의 막이 내렸다. 의인왕후 사후 선조는 계비를 간택, 1606년 선조의 계비가 된 인목왕후가 그 후 영창대군(적자)을 낳자, 광해군을 내심 탐탁치 않게 여기고 미워하던 부왕 선조는 다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소북파의 유영경 등도 적통론을 내세워 영창대군 옹립계획을 세운 선조를 지지하였다. 특히나 선조 자신이 서얼에다가 방계승통을 했다는 콤플렉스까지 겹치면서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선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며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1609년 광해군은 자신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자신을 압박하던 명나라가 활용하던, 친형제이자 장자 임해군을 .. 202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