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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284

세조의 인간 세조와 그의 업적 세조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왕이였다. 그를 평할때면 '피의군주'라 불리울 정도이니 그가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 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개인적인 인생사를 보면 불행할 따름이였다. 그렇다고 그를 동정 할 수는 없다. 세조 자신의 업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조도 정작 자기 가족과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남자였다고 한다. 세조는 어머니 소현왕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소현왕후 말년에 병으로 자주 피접을 갔는데, 마지막으로 요양한 곳이 바로 둘째 아들인 세조의 개인 사저였을 정도였다. 또한 세조는 무척 애처가였다고 한다. 세조는 왕이 되서도 후궁을 한명밖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세조는 아내 정희왕후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왕이 후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2020. 2. 28.
세조의 일화 이야기들 조선 7대 왕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세조에게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저주를 내렸다는 얘기는 앞서서도 했었다. 세조가 몸에 종기가 생기면서 온몸에 퍼지였는데 그건 꿈에 나타난 현덕왕후가 세조에게 침을 뱉으면서 생겼다는 얘기가 있다. 이로 인해 세조는 매일을 고통속에 살아야 했다. 그런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하였는데 그 중에 상원사에서 치료를 하였다고 한다. 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조, 문수보살을 친견하다 세조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상원사에 기도를 드리고자 오대산을 찾아와 먼저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향했다. 도중에 더위를 식히고자 신하들을 물리치고 청량한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그때 마침 동자승이 지나가기에.. 2020. 2. 28.
세조, 피바람 위에 오른 왕좌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었다. 자기 형제를 죽였으며 자기 조카인 단종의 목숨을 거두었으며 세종이 사랑했던 수 많은 집현전 신하들의 목숨을 거두었으며 무엇보다 문종의 유언을 받은 고명대신인 김종서와 황보인의 죽임으로서 자기 야욕의 시발점을 만들었다. 또한 세조만큼이나 야망가였던 안평대군을 역모로 몰아 주였다. 이런 형에게 반대하던 여섯번째 동생 금성대군은 단종의 복위를 애쓰다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세조가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의 반대파를 모두 제거하는 일이였으며 많은 피를 흘리였던 것이다.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인 금성대군은 형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나선 인물이다. 불온분자로 낙인 찍힌 이후 경상북도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인 순.. 2020. 2. 27.
조선 7대 왕 세조 - 이유 조선 제4대 세종은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휘(諱)는 유(瑈), 자는 수지(粹之), 시호는 혜장(惠莊)이다. 윤번(尹璠)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왕위에 등극하여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되었다. 형인 문종에 비해 학문보다 무예(武藝)에 능하고 병서(兵書)에 밝았으며, 진평대군(晉平大君)·함평대군(咸平大君)·진양대군(晉陽大君)이라 칭하다가 1445년(세종 27)에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홍위(단종)가 즉위하자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단종 재위시인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적이었던 김종서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 2020. 2. 26.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 조선의 6대 왕이였던 단종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누나인 경혜공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종과 6살차인 경혜공주는 단종 못지 않은 기구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당차고 현명했던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문종의 1남 2녀 중 장녀이자 제6대 왕 단종의 친누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다. 경혜공주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문종은 즉위 전이었고, 어머니 권씨는 세자의 후궁으로 품계는 종3품 양원(良媛)이었기 때문에 '현주'로 불리게 되었다. 위로 언니가 있었으나 태어난 지 1년도 못 되어 1433년에 죽었다. 어머니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경혜공주는 현주에서 군주로 승격되고, 세자빈의 거처인 자선당에서 살게 되었다. 이때 그는 평창 .. 2020. 2. 25.
단종,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못 한 단종 그리고 그의 설화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는 천연기념물인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유지비각과 금표비가 있는 청령포 쪽을 바라보면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 유난히 우뚝 선 우아한 자태의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다. 나이가 600년이라는 관음송은 생멸(生滅)하는 물체로서는 유일하게 단종의 유배를 지켜 본 존재이다. 곧, 당시 처절하였던 단종의 생활을 보았으니 관(觀)이요, 하염없던 단종의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라는 뜻이다. 두 갈래로 나뉘어진 아래쪽 가지 사이에 걸터 앉아 무료한 시간을 달래었을 어린 노산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457년 여름 청령포에 큰 홍수가 나자 단종의 유배지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 2020. 2. 24.
단종, 유배지에서 죽다 1. 조선의 대 왕 단종을 말할때면 비운의 왕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왕 단종의 험난했던 왕의 길과 소년의 나이 상왕이 되고 상왕의 자리에서 노원군으로 격하되어 유배길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그 유배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 하고 죽어야 했던 짧은 생을 참으로 힘들게 마감했던 그러기에 한없이 가엽은 왕이 아닐 수 없다. 단종과 그 정부인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영도교에서 이별을 한다. 그 다리는 단종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별을 했다 하여 영영이별교가 된다. 여기서부터 금부도사 왕방연은 주민들의 눈을 피해 가까운 한강의 나루터로 가 이천의 천서리까지 배를 이용한다. 거기서 장호원, 원주, 주천, 제천을 거쳐 단 닷새 만에 영월 청령포로 압송한다. 당시 단종의 유배 호송인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영월.. 2020. 2. 23.
단종, 노산군이 되어 유배를 가다 단종은 1455년 6월 11일 3년 1개월의 재위기간을 뒤로하고 숙부인 수양에게 양위한뒤 상왕에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또한 쉬운 길은 아니였다. 아직 십대였던 단종에게는 두렵고 힘든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홍윤성(洪允成) 등은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자 과거에 세종·문종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았던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 등 문관은 무관인 유응부(兪應孚)·성승(成勝)·박쟁(朴崝) 등과 모의, 상왕(上王: 단종)을 복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집현전학사 출신 문관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거사를 모의한.. 2020. 2. 22.
단종, 어린나이에 상왕이 되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의 즉위는 혈헌단신으로 아무도 곁을 지켜주는 이 없이 오르게 된다. 문종이 2년 2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을 마치고 승하게 되는데 이때 어린 세자를 걱정하며 고명대신에게 유언을 남기게 된다.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 어린 것을 염려하여 황보 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한편 집현전(集賢殿)의 학사인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등에게도 좌우협찬(左右協贊)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단종에게 형제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형제들인 숙부들이 있었다. 하지만 숙부였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대단한 야심가 였다. 그런 그들로부터 문종의 유언을 받은 김종서와 황보인등은.. 2020.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