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야기284 조선 6대왕 단종의 가족관계 단종의 가족관계는 사실 말할만한 내용이 없다. 그에게는 부인이 1명 있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단종은 1453년 13세 때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단종은 송현수의 딸 정순왕후 사이에는 소생이 없었다. 단종은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 달 24일 목을 에어 죽었다. 그는 1681년 숙종7년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에 단종으로 복위되었다. 정순왕수 송씨는 그녀는 세조의 증손이자 단종의 종손뻘인 중종(中宗) 16년인 1521년 7월 7일(음력 6월 4일), 82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중종의 재위 초기, 사림파인 조광조 등에 의해 복위가 주장됐으나 중종은 이를 거부했다. 그 뒤 현종 때부터 송시열과 김수항 등은 단종과 그녀의 복위를 거.. 2020. 3. 3. 태종 이방원 하륜을 만나다. 하륜은 1347(충목왕 3)∼1416(태종 16).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珙辰)의 후예로, 하식(河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식목녹사(拭目錄事) 하시원(河恃源)이고, 아버지는 순흥부사 하윤린(河允潾)이다. 어머니는 증찬성사 강승유(姜承裕)의 딸이다. 1360년(공민왕 9)에 국자감시(國子監試), 1365년에는 문과에 각각 합격하였다. 이인복(李仁復)·이색(李穡)의 제자로, 1367년에 춘추관검열·공봉(供奉)을 거쳐,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으나 신돈(辛旽)의 문객인 양전부사(量田副使)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고공좌랑(考功佐郎)·판도좌랑(版圖佐郎)·교주찰방(交州察訪)·제릉서영(諸陵署令)·지평·전리정랑(典理正.. 2020. 3. 3. 태종 이방원, 외척과 공신을 제거하다. 정비 원경왕후는 조선 초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을 지낸 민제(閔霽)의 딸로서 태종이 등극할 때까지 여장부로서 명석하게 내조를 잘했다. 그런데 왕위에 등극한 뒤 태종은 잉첩(媵妾 : 곁에서 모시는 시녀)들만 가까이하였다. 이에 원경왕후가 투기를 보이자 불화가 잦아지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외척 세력으로서 아버지 민제와 왕비인 원경왕후의 권세를 믿고 활개를 치던 민씨 형제들이 탄핵을 받게 되었다. 즉, 궁중에 들어가 종친에게 무례할 뿐 아니라 종친간에 이간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개국·정사(定社)·좌명(佐命) 등 삼공신의 탄핵을 받게 된 것이다. 1407년(태종 7) 가을 삼공신이 모여 민무구·무질(無疾) 형제를 논죄할 때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박은(朴訔)이 병.. 2020. 3. 3. 성종이 사랑한 여인 폐비윤씨 그리고 비극의 시작 폐비 윤씨는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 왕 연산군의 어머니다. 연산군 때 올린 시호는 제헌왕후(齊獻王后)였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削奪)되었다. 묘호는 회묘(懷墓). 한편으로 폐비 윤씨를 추존된 왕비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미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성종이 책봉한 정실 왕후였기 때문에 이것은 맞지 않다. 추존(追尊)은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 해당 지위에 없었던 인물에게 그 지위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폐비 윤씨의 성종의 사랑을 받은 여인으로 왕후에 오른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지나친 욕심으로 폐위가 되고 사약을 받고 죽기까지 비극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 비극은 그녀가 아들 연산군을 더욱 포악하게 만들게 된다. 성종의 계비로서 폐비가 된 제헌황후 윤씨는 판봉상시사 윤기견과 그의 둘째.. 2020. 3. 3. 조선 5대 왕 문종의 가족관계 조선의 5대왕 문종은 3명의 부인과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문종은 첫번째 아내였던 휘빈 김씨는 질투에 눈이 멀어 온갖 비방을 쓰다가 발각되어 쫓겨나게 된다. 첫째 부인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둘째 아내였던 순빈 봉씨는 궁녀와 동성애를 나눈 것이 발각 되어 쫗겨나게 된다. 둘째 부인에게서도 자녀가 없었다. 세번째 부인은 당시 후궁이였던 권씨였는데 후궁 권씨는 문종과 사이가 무척 좋았기 때문에 세자빈이 되었다. 세자빈 권씨와 문종 사이에서 탄생한 자녀는 1남 1녀로 이들이 바로 조선의 제6대 임금이 되는 단종과 그의누나인 경혜공주이다. 하지만 세자비 권씨는 문종을 낳고 숨을 거두게 된다. 문종이 즉위할 때 정실부인을 맞이하지 않고 즉위를 한다. 문종은 즉위하고 승하하게 되는 재위기간 2년 4개월 동안 정.. 2020. 3. 2. 정종실록 정조실록은 조선왕조 제2대 왕 정종 원년인 1398년 정월부터 정종 2년 11월까지 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원래의 이름은 이고, 모두 6권 1책으로 구성되었다. 세종 6년인 1424년 3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세종 8년인 1426년 8월에 완성하였다. 은 본래의 이름은 이었다. 정종은 세상을 떠난 뒤 묘호를 올리지 아니하였고 명날 황제로부터 받은 시로 공정을 칭호로 하였기 때문에, 실록도 이라 하였다. 숙종 7년인 1681년에 그에게 정종이란 묘호를 추존하면서 실록도 이라 하고 표제만 바꾸었다. 은 세종 8년 8월에 변계량, 윤회, 신장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하였으나 세종 20년인 1438년 9월 25일 중의 제1차 왕자의 난이 소위 방석의 난과 중의 제2차 왕자의 .. 2020. 3. 2. 태조실록의 편찬과 내용 은 태조 원년인 1392년부터 1398년 9월까지 7년 동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다. 모두 15권 3책이며, 처음에는 베껴 쓴 책으로 전해지다가 뒤에 활자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1409년 8월 28일에 태종은 영춘추관사 하륜, 지춘추관사 유관, 동지춘추관사 정이오, 변계량에게 명하여 을 편찬하게 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멀지 아니하고 또 당시에 활동하던 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으므로 실록 찬수가 이르다 하여 후일을 기다리자는 건의도 있었으나 태종은 듣지 않았다. 태종은 태조 원년부터 정종 2년까지의 사로츨 각 사관에게 제출하도록 명령하는 동시에, 하륜 등으로 하여금 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15권이 처음 완료된 것은 태종.. 2020. 3. 1.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야기 조선왕조실록은 이성계가 133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1392년 조선왕조를 창업하여 27대 518년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멸망하기까지 역대 왕들의 실록을 모은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시에 편찬된 사서가 아니라 대대로 편찬한 것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대체로 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다음 왕 때에 임시로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여 전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상례였다. 실록 편찬시 이용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보고한 문서 등을 연월일순으로 정리하여 작성해둔 춘추관 시정기(春秋館時政記)와 전왕 재위시의 사관(史官)들이 각각 작성해둔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승정원일기』·『의정부등록』 등 정부 주요 기관의 기록과 개인 문집 등이었다. 후세에는 『조보(朝報)』·『비변사등록』·.. 2020. 3. 1. 태조 이성계, 무학도사를 만난다 무학도사하면 태조 이성계를 떠올릴 수 있고 정도전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의 기록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무학도사의 법명은 자초(自超), 속성은 박(朴)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陝川郡: 삼기(三岐)) 삼가면에서 출생하였다. 1344년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진주(鎭州) 길상사(吉祥寺)·묘향산 금강굴(金剛窟) 등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하여 그때 원에 와 있던 혜근(惠勤)과 인도승 지공(指空)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고려말 퇴락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이성계를 만나.. 2020. 3. 1.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