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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284

조선 13대 왕 명종 - 이환 명종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두 번째 적자로 어머니는 문정왕후 윤씨이다. 인종은 후사를 두지 못하고 승하한 후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제 13대 임금, 명종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했다. 그 시기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들의 부정부패가 심했고, 을사사화가 발생하는 등 사화가 극도로 어지러워진다. 명종의 재위기간은 1545~1567년이다. 이름은 이환(李峘), 자는 대양(對陽)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비는 인순왕후(仁順王后)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이다. 중종(中宗)의 둘째 적자(嫡子)이며 인종(仁宗)의 아우이다. 중종은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와의 사이에서 인종을 낳고, 제2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와는 명.. 2020. 3. 18.
조선 12대 왕 인종 - 이호 인종은 조선 11대 중종의 장자로 어머니는 장경왕후 윤씨이다. 중종은 후궁인 경빈 박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맏아들 복성군이 있었지만, 정비의 소생인 인종을 왕세자로 앉힌다.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숨져 후에 문정왕후가 새 어머니가 된다. 인종은 6세에 왕세자가 되었지만, 새어머니인 문정왕후가 경원대군(훗날의 명종)을 낳은 후에 입지가 불안해진다. 결국 힘겹게 왕위이ㅔ 오르지만, 불행히도 즉위한지 9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재위기간은 조선의 27명의 임금 중에서 가장 짧았다. 인종의 본래 이름은 이억이였다. 인조의 어머니인 장경황후는 인종을 낳은 지 불과 7일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녀는 눈을 감기 전 남편인 중종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 2020. 3. 17.
중종의 남자 조광조 기묘사화로 죽다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천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여 사림 28명을 선발했으며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였다. 사흘 후 기묘사화가 일어나 능주로 귀양갔으며 한달만에 사사되었다. 본관 한양. 자 효직(孝直). 호 정암(靜庵). 시호 문정(文正).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이며,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어천찰방(魚川察訪)이던 아버지의 임지에서 무오사화로 유배 중인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다. 1510년(중종 5) 진사시를 장원으로 통과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 성균관에서 학문과 수양이 뛰어난 자를 천거하게 되자 유생 200여 명의 추천을 받았고,.. 2020. 3. 16.
중종의주요정책과 사건과 중종의 묘 중종의 재위기간은 재위기간은 38년 2개월이 였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반정의 훈구세력들이 강압은 거침이 없었다. 중종이 사랑한 부인 단경왕후 신씨를 폐위를 시킬만큼 반정 신하들의 강압적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중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왕위에 오른지 10년이 되는 해인 1515년(중종 10),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를 중용하여 새로운 왕도정치를 실시하고자 하였다 중종은 조광조 일파를 등용한 초기에는 미신 타파를 위하여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하고, 향촌에 향약(鄕約)의 실시를 권장하였다. 재위 후기에는 군적(軍籍)의 개편과 전라도ㆍ강원도ㆍ평안도에 대한 양전(量田, 토지조사)을 실시하였으며, ▲진(鎭)의 설치 ▲성곽의 보수 ▲평안도 여연ㆍ무창 등지의 야인을 추방하는 등 국방정책에.. 2020. 3. 16.
중종의 조강지처 단경왕후 신씨 그리고 치마바위 연산군의 폭정이 지속되자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을 중심으로 반정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때 목숨만 겨우 버티던 왕자였던 중종이 하루 아침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때 중종의 나이 19세였다. 중종은 한 번도 정식으로 왕위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무능한 형을 대신해 신하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왕이 된 것이었다. 즉 정통성을 이어받은 왕이 아닌, 그저 신하들의, 신하들에 의한, 신하들을 위한 임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중종은 조강지처까지 버려야 했다. 중종의 왕비 신씨는 반정 때 반정군에 죽임을 당한 신수근의 딸이었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장인 신승선의 아들로 연산군과 처남 남매 간이었다. 신씨는 1487년인 성종18년 1월 14일 신수근의 딸로 태어났다. 1449년인 연산군5년 진성대군과 가례를.. 2020. 3. 16.
중종 , 반정을 일으키고 왕이 되다. 종종반정이란 조선 제10대왕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 이역(晉城大君 李懌)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배경으로는 1506년(연산군 12)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 등 이른바 훈구세력이 임사홍(任士洪)·신수근(愼守勤) 등의 궁금세력(宮禁勢力)과 결탁해 학정을 거듭하던 연산군을 폐위시킨 사건이다. 연산군은 당시 특권 관료층인 훈구세력과 성종 때부터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신진 사림세력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왕위에 올랐다. 그는 1498년 훈구세력과 결탁해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사림파를 무오사화로 한 차례 거세하였다. 이로써 정치적 우세를 더욱 확고히 한 훈구세력은 그 횡포가 더욱 심해지고 권귀화(權貴化)의 경향을 현저하게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연산군은 궁금.. 2020. 3. 15.
조선 11대 왕 중종 - 이역 중종은 1488년에 태어나 1544년에 사망했으며 재위기간은 1506년부터 1544년까지인 38년2개월간이다. 조선의 제9대 임금 성종과 계비인 정현왕후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했다. 왕자 시절의 이름은 진성대군이며 이복형인 연산군의 폭정이후 1506년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다. 연산군 시기의 폐해를 개혁하기 위해 조광조와 같은 신진세력을 등용해 왕권 강화를 시도하지만, 훗날 기묘사화로 그들을 숙청한다. 자는 낙천(樂天), 휘(諱) 역(懌)이다. 성종의 2남이며 연산군(燕山君)의 이복동생이다.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 비는 신수근(愼守勤)의 딸 단경왕후(端敬王后), 제1계비(繼妃)는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 제2계비는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14.. 2020. 3. 15.
성종, 훈구세력의 견제, 사림의 김종직을 들이다 김종직은 조선전기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학자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효관(孝盥)·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는 사예 김숙자(金叔滋)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로 사재감정(司宰監正) 박홍신(朴弘信)의 딸이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이듬 해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얻어 독서에 전념)하였으며, 1462년 승문원박사 겸 예문관봉교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 감찰이 되고, 이어서 경상도병마평사·이조좌랑·수찬·함양군수 등을 거쳤으며, 1476년(성종 7) 선산부사가 되었다. .. 2020. 3. 15.
조선 8대 왕 예종 - 남이의 옥 남이의 옥이란 예종 때에 남이(南怡), 강순(康純) 등이 역모 혐의로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 예종은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지낸 왕이다. 그만큼 업적과 사고가 별로 없는 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종의 짧은 재위기간과는 상관없이 신하들 간의 세력다툼 크게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신하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생긴 큰 사건이 '남이의 옥' 사건이다. 남이는 태종의 외손으로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아 1457년(세조 3)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무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서 건주야인(建州野人)을 토벌하는 데 세운 전공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27세에 공조판서가 되고, 그 뒤 병조판서가 되었다. 1468년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강.. 2020.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