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야기284 세조의 숙적 김종서 김종서는 1383(우왕 9) 태어나 1453(단종 1)죽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할아버지는 지평 김태영(金台泳)이고, 아버지는 도총제(都摠制) 김추(金錘)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배규(裵規)의 딸이다. 그는 세종 때 6진 개척을 주도한 인물로, 그리고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세력에 의해서 살해된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300여 년이 지난 영조 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해 1415년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을 지냈다. 1418년(세종 즉위년) 11월 감찰로서 강원도의 답험손실(踏驗損實: 실지 답사를 통해 수확량을 조사함)로 원성이 크자 조정에서 다시 .. 2020. 3. 14.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 한명회(韓明澮, 1415~1487)는 조선전기 계유정난의 설계자로서,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한명회는 또한 두 딸을 예종과 성종에 들이면서 왕의 장인으로서, 지략으로 당대 권력의 정점에 위치하였다. 한명회는 잉태된 지 7달 만에 태어나, 어려서는 사지가 완전치 못했는데, 차츰 장성하면서 체구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커지고, 또 지모가 남달리 뛰어났다. 젊었을 때에 절에서 글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산골짝을 가는데 범이 그를 호위하고 갔다. 공이 이르기를, “멀리까지 와서 보내 주니 족히 후의를 알 수 있네.” 하였더니 범이 마치 머리를 숙이고 꿇어 엎드리는 듯이 하더니 날이 밝을 무렵에야 갔다. 또 한 번은 그가 영통사란 절에 들러 머무른 일이 있었다. 그때 늙은 중 한 사람이 그의 상.. 2020. 3. 14. 연산군, 천명의 기생과 향락을 즐긴 폭군 그리고 그의 최후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은 어린시절 어머니 윤씨가 폐비가 되었다. 하지만 어린 연산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지도 못한채 가족들이 자신을 멀리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며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런 연산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을 방관하고 외면했던 이들에게 복수을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그리고 왕권을 잡기 위한 무오사화를 일으키며 많은 피를 보게 된다. 또한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수를 하기위해 갑자사화를 일으키며 궁에는 피바람이 멈출날이 없었다. 연산의 만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연산군 11년인 1505년 6월, 연산군은 전국 팔도의 미녀와 튼튼한 말을 구하는 지방 관리인 '채홍주사'를 파견한다. "이제 이계동을 전라도에 , 임숭재를 경상도.충.. 2020. 3. 14. 생유신과 사육신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충신들로 성삼문 · 박팽년 · 유응부 · 이개 · 하위지 · 유성원 등 핵심 인물 6명을 일컫는 말이다. 생육신은 김시습 · 원호 · 조려 · 성담수 · 남효온 · 이맹전을 일컫는 말로 사육신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의미를 지녔다. 성삼문은 집현전을 중심으로 동문수학했던 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 등 뜻이 맞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고 무인인 유응부도 거사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들의 거사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모두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화를 입은 인물은 사육신을 비롯해 권자신, 김문기 등 7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가 단종 복위 운동에 나선 인물을 대개 사육신으로만 알고 있는 까닭은.. 2020. 3. 12. 세종대왕 훈민정음을 만들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일은 엄청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어떤 나라와 견주어도 자랑할 만한 문자이다. 이런 훈민정음을 만들기까지 무수한 사건과 사고 그리고 반대가 있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만들어낸 한글은 그래서 더 찬란한 업적이 아닌가 싶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집필자들은 정인지·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전권 33장 1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 1446년 9월 상한(上澣:초하루에서 초열흘까지의 기간).. 2020. 3. 12. 세종이 사랑한 신하 장영실 조선 세종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기억되는 장영실(蔣英實). 역대 과학자 가운데 장영실만큼 이름이 회자되는 인물도 없지 않을까 싶다. 장영실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한국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할 정도로 유명인이었지만, 정작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기도 하다.장영실이 어떻게 출생하여 성장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까닭은 그의 출생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종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장영실은 동래현의 관노(官奴), 즉 노비였다.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의 부친은 원(元)나라 사람으로 소주(蘇州)·항주(杭州) 출신이고, 모친은 기녀였다고 전한다. 실상 부친이 관노가 아니었음에도 장영실이 관노가 된 것은 모친의 신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 2020. 3. 11. 집현전 학자 신숙주 신숙주의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 또는 희현당(希賢堂),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버지는 공조참판(종2품)을 지낸 신장(申檣, 1382~1433)이고,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이다. 참판이라는 벼슬이 보여주듯 신장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졸기에는 그가 인품이 온후하고 사장(詞章) 과 초서ㆍ예서에 뛰어났지만, 술을 너무 좋아한 것이 단점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의 능력을 아낀 세종이 절주를 당부했지만, 과음은 결국 그의 사인(死因)이 되었다(세종 15년 2월 8일). 그러니까 신숙주는 16세 때 아버지를 여읜 것이다. ‘숙’이라는 이름이 나타내듯이, 신숙주는 신맹주(申孟舟), 신중주(申仲舟), 신송주(申松.. 2020. 3. 11. 세조실록 은 조선왕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기간인 1455년 윤6월에서 1468년 9월, 14년가의 역사를 기로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음 이며, 모두 49권 18책으로 간행되었다. 끝의 2권은 세조 대에 제작한 악보를 수록한 것으로, 의 악보와 함께 아악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세조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 즉 예종 원년인 1469년 4월 1일에 춘추관 실록청을 설치하고, 신숙주. 한명회를 영춘추관사, 최항을 감춘추관사. 강희맹.양성지를 지춘추관사, 이승소. 김수령. 정난종. 이영은. 이극돈. 예승석을 동지 춘추관사에 임명하여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은 처음 6방으로 나누어서 편찬하였으나, 그 해 1월 예종이 승하하고 성종이 즉위하자 6방을 3방으.. 2020. 3. 11. 세종 사랑하는 신하 집현전 학자들 세종의 업적을 말하려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집현전의 학자들은 세종의 업적 중에 한글 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집현전이란 '현명한 학자들이 모인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곳이였다. 세종은 집현전에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대표적으로 ‘사가독서’란 제도가 있는데 이것은 학사들에게 독서를 위한 휴가를 주어 업무를 잊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또한 학사들이 학문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많은 책을 비치해 두었다. 집현전 학사들은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제도와 나라의 정책에 대해 연구했다.임금과 함께 나라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들이 한 학문 연구는 .. 2020. 3. 10.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