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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낙산해수욕장을 걸어요 4월의 어느 날 낙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평일 이른 아침인지라 사람도 없고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비가 많이도 내리는 날이었다. 손님 하나 없는 카페엔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창 넘어에 음악소리를 뚫고 빗소리가 들였다. 멀리 보이는 파도는 제법 높은 기세로 하얀 거품을 많들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우산을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셀카봉 하나 준비하지 않고 왔는데 이 해변을 놓칠 수가 없었다. 비는 내리고 사람은 하나 없는 넓은 해변 그리고 들리는 비 소리.... 사실 빗소리가 듣고 싶어 아무도 없는 해변이 걷고 싶어 나왔다가 동영상을 찍었다. 낙산해수욕장에 바다 뷰가 아주 좋은 카페가 있다. 낙산에 내려 갈때면 난 이곳에서 오전을 오롯이 보낸다. 카페는 내부가 넓어 답답하지 않고 큰 .. 2020. 7. 7.
숙종 6년 경신환국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 남인(南人)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사건을 말한다. 숙종은 아버지인 현종이 예송논쟁에 휩싸여 신권에 끌려다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14살에 등극하자마자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나 증조할머니 장렬왕후 조씨의 수렴청정 없이 곧바로 친정을 하였다. 아래 꾸준히 언급되는 삼복(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이 남인과 가깝게 지냈으며, 복선군은 현종 경신대기근 시기 청나라에 가서 강희제에게 대량의 구휼품을 얻어왔다. 군약신강이란 표현이 나온 바로 그 사행이다. 이 사행은 서인인 현종비 명성왕후와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 김우명, 김좌명 등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무렵 북벌론을 강경하게 주장했던 윤휴 등은 "청나라가 삼번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를 틈타 요동을 정벌.. 2020. 7. 7.
독도를 지킨 조선의 백성 < 안용복 > 안용복은 동래부 출신으로 동래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하면서 왜관에 자주 출입하여 일본 말을 잘하였다. 동래에 주둔 중인 조선 수군(경상좌수영) 부대로 들어가 능로군(能櫓軍) 병사로 근무하여 당시 부산에 주재 중인 왜관(倭館)을 자주 왕래하고 일본인과 대화를 했던 영향 때문에 일본어에도 능통한 편으로 일본어 통역도 맡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에는 평범한 어획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울릉도에 몰래 불법으로 입항한 일본 어선이 정박한 것을 본 후에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갔다. 안용복의 제1차 도일은 1693년 3월에 일어났.. 2020. 7. 6.
한양 성곽길과 길상사 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를 소개 합니다. 한양 도성은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2020. 7. 4.
숙종이 사랑한 여인 < 희빈 장씨 > 희빈 장씨는 조선 19대 왕 숙종의 빈이며 20대 왕 경종의 생모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이름은 옥정(玉貞)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는 역관(譯官) 출신인 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친가와 외가 모두 역관 집안으로 매우 부유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부인 장응인(張應仁)과 외조부인 윤성립(尹誠立)은 모두 역관으로 벼슬이 정3품과 종4품에 이르렀으며, 당숙인 장현(張炫)은 숙종 때에 역관의 수장인 수역(首譯)을 지냈으며 거부(巨富)로 이름이 높았다. 정확한 시기와 배경은 확인되지 않으나 어린 나이에 나인(內人)으로 뽑혀 입궁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희빈 장씨가 “머리를 따 올릴 때부터” 궁중에 들어와 생활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숙종의 후궁이었으며, 한 .. 2020. 7. 3.
숙종의 계비 < 인현왕후 민씨 > 인현왕후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계비. 기사환국 때 폐서인이 되었다가 갑술옥사로 다시 왕후로 복위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궁녀가 쓴 소설《인현왕후전》이 전해진다. 성은 민씨(閔氏)이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존호(尊號)는 효경숙성장순(孝敬淑聖莊純), 휘호(徽號)는 의열정목(懿烈貞穆)이다. 형조판서 등을 지낸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딸로서 1681년 숙종의 계비(繼妃)가 되었다. 숙종은 세자로 책봉되고 김만기(金萬基)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숙종이 왕으로 등극하자 김씨는 인경왕후(仁敬王后)가 되었다. 하지만 인경왕후가 천연두로 20세에 사망하자 인현왕후가 숙종 비로 간택되었던 것이며 그녀의 나이 15세였다. 인현왕후는 1680년,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가 천연두를 앓으면서 20살에 요절.. 2020. 7. 2.
조선 19대 왕 숙종 - 이 순 숙종은 조선 제19대 왕으로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 · 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사업을 추진해 완결을 보았다. 주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해 상평통보를 주조,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했다. 영토 회복 운동을 전개했고 금위영을 추가로 설치하여 5영체제를 완결했다. 숙종의 자 명보(明譜), 휘 순(焞), 현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이며 비는 김만기(金萬基)의 딸 인경왕후(仁敬王后)이다. 계비는 민유중(閔維重)의 딸 인현왕후(仁顯王后), 제2계비는 김주신(金柱臣)의 딸 인원왕후(仁元王后)이다. 1667년(현종 8) 왕세자에 책봉되고, 1674년 14세 때 조선왕조 19대 임금에 즉위하였다. 인경왕후 김씨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고, 희빈 장씨에게선 두.. 2020. 7. 1.
1박2일 혼자 떠나는 < 여수여행 > 필자는 여행을 좋아한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여행에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음이 좋다. 특히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구속함이 없어 좋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끼니를 생각해서 맛집을 알아봐야 하고 미리 어디를 가야 할지 계획해야 하며 어디서 자야 할까 숙소도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내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여행을 하게 되면 머릿속은 온통 다음 행선지와 식사를 걱정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욕심껏 오래시간 떠나고 싶지만 그건 정말 욕심을 내는 것이고 당일이나 1박 2일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지는 갔던 곳에 가는 경우가 많다. 같은 여행지라도 다른 계절 다른 장소를 다니다 보면 새로운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여수가 나에겐 그런 곳이다... 2020. 6. 30.
숙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 19대 왕 숙종의 재위기간인 1674년 8월에서 1720년 6월인 46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65권 73책으로 간행되었다.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숙종이 세상을 따난 지 반년 뒤인 경종 즉위년인 1720년 11월부터 편찬에 착수하여 영조 4년인 1728년 ㄷ월에 완간하였다. 실록 편찬에 9년이 소용되었는데, 이는 숙종의 재위기간이 47년이나 되어 기사의 분량이 많았고 편찬 도중에 노론.소론의 정쟁으로 신임옥사가 생기는 등 정국이 자주 바뀌고 편찬 책임자가 여러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을 편찬한 전후의 실록청 관원은 아래와 같다. 총재과-김창집, 토대구,최규서, 최석항, 이광좌, 정호, 이관명, 민진원,이의현. 도.. 2020.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