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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윤원형의 첩 - 정난정

by 무님 202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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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정은 ?∼1565(명종 20). 조선 중기의 척신() 윤원형()의 첩이다. 을사사화에 관여하였으며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정경부인()의 작호를 받았으나 문정왕후가 죽은 뒤 사림의 탄핵을 받아 자결하였다. 본관은 초계()이며,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관비() 출신이다. 미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기생이 되어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에게 접근하여 첩이 되었다.

 

1545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명종()을 대신하여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소윤()의 우두머리였던 윤원형의 사주를 받고 명종과 문정왕후에게 인종의 척족 윤임()이 그의 조카 봉성군(;중종의 8남)에게 왕위를 잇게 하려 획책한다고 무고하였다.
이는 인종의 외척인 대윤()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의 반목으로 빚어진 권력다툼으로, 대윤의 우두머리인 윤임과 영의정 유관(), 이조판서 유인숙() 등이 반역음모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됨으로써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니 이를 을사사화()라고 한다.
1551년(명종 6) 윤원형의 정실 김씨를 몰아내고 적처()가 되었다.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으므로,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은 윤원형과 정난정 부부의 자녀들과 다투어 혼인줄을 놓았다고 한다.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의 반대도 극심하였고 정난정의 후원자인 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인()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으로 유배되었으나 윤원형의 적처였던 김씨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몸에 지니고 있던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이후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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