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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야사이야기

조선에서도 솔로몬의 재판이 있었다

by 무님 202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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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그날의 기록<조선왕조실록>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 왕은 명하였다. 

'그럼 아이를 반을 갈라서 공평하게 나눠 가져라."

그러자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저 여인에게 아이를 주십시오."

솔로몬 왕은 그 여인을 친엄마로 판결하여 아이를 주게 하였다. 3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다. 솔로몬의 재판이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 솔로몬의 지혜로움을 보여 주는 증거라면 태종의 자애로움을 나타내 주는 사례도 있다. 

태종 11년 6월 형조에서 편ㄱ하기 어려운 두 가지 사건에 대한 판정을 임금에게 요청한 일이 있었다. 두 사건은 모두 모자간의 문제였다. 형조 판서 임정이 임금에게 판정을 청하였다.

"형조에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한 어미는 아들이 살기를 구하고, 한 어미는 아들이 죽기를 원하는 일입니다."

형조 판서가 말한 사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사건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하나, 둘째 사건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하는 두 여인을 연상케 한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한 여인은 아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고, 다른 여인은 아이의 목숨에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임정의 말을 들은 임금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형조 도관의 여종이무개가 말하기를 ' 내 아들이 나를 구타하니, 이놈을 죽여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신 등이 여러 날 동안 조사해도 실정을 밝혀내지 못하였습니다. 아들의 용모를 봐도 매우 열등하고 약하여 어미를 구타할 수 없는 놈인 듯 보였습니다."

 어떤 여종이 자기를 구타하는 아들을 죽여 달라는 고소를 하여 형조에서 조사해 보았지만, 증거가 부족하여 진상을 밝히기 어려웠고, 아들 역시 약해서 어머니를 구타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아마도 형조에서는 구타를 당했다는 어머니이 주장을 믿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자기 부모를 구타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여 큰 사회 문제가 되는데, 조서 시대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이어서 동석했던 대사헌 황희가 거들었다.

"신도 알고 있습니다. 이 여종은 일찍이 남의 첩이 되어 음탕하고 난잡한 행동을 자행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다른 곳에서 자라서 본래부터 모자의 애정이 없기에 항상 해치려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여종이 부정한 행위로 인해 낳은 아들이고, 따로 살다 보니 정이 없어 죽이려고 했다는 주장이었다. 형조 판서와 대사헌의 말을 종합하면 어머니가 아들을 미워하여 구타당했다는 핑계를 대고 아들을 고소했다는 것이다. 두 신하의 말을 들은 임금은 명하였다. 

"어미가 아들을 죽이려고 하거늘 어찌 공여한 일이겠는가? 자세하게 살펴보라."

임금은 사람 목숨과 관계있는 사건인 만큼 좀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인명을 중시하는 태종의 면모를 보여 주는  태도라고 하겠다.

형조 판서 임정이 아뢴 두 번째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궁궐의 말을 관리하는 기관 사복시에서 말을 기르는 일을 하는 자가 말 먹이인 콩 한 섬을 훔쳤다. 사복시에서 그를 징계하지 말라고 명했다고 하였다. 그는 거짓으로 세자가 자신을 징계하지 말라고 명했다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감히 세자인 양녕대군에게 직접 고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세자를 만나려고 세자가 지나갈 만한 길가에서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세자가 궁궐로 돌아가다 마침 그녀를 보았다. 세자가 말을 멈추고 그녀에게 서 있는 이유를 물었다.

"저는 말을 치는 놈의 어미입니다. 빨리 제 자식을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애원에 세자가 말하였다.

"내가 감히 마음대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형조에서는 여인을 처벌할 마땅한 법령이 없다고 하면서 임금의 처분을 청하게 되었다. 임금은 매우 온정적인 판결을 내렸다. 세자의 말을 사칭한 아들은 무리하게 처벌하지 말고 교수형에서 1등급을 감형하도록 하였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속히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아들을 살리려고 세자에게 청한 일은 인지상정에서 나온 바이다. 어찌 되을 줄 필요가 있겠는가?"

임금의 자상한 배려로 아들을 살리려던 어머니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게 되었고, 아들도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모자가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의 판단에서 태종은 솔로몬 왕과 마찬가리로 지혜롭고 자애로운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태종의 아들 세종이 애민 정신에 입각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부왕 태종에게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이 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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