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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6

사도세자의 방탕생활 3. 1761년 영조 37년 4월 동궁의 시종들과 세자빈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안감사 정휘량의 감언에 따라 세자는 평양으로 떠났다. 물론 영조의 윤허도 없이 몰래 떠난 것이었다. 20일 만에 돌아온 세자에게 동궁의 유선 서지수, 대사성 서명응, 장령 윤재겸 등이 부왕을 만나 요서를 빌라고 건의하였으니 세자는 이들에게 폭언을 퍼붓자 세자의 장인인 우의정 홍봉한이 울면서 건의하였다. 세자는 하는 수 없이 부왕을 만났다. 겉으로는 평양을 다녀온 문제는 수습되는 듯했다. 당시 영조는 여러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젊고 발랄한 문 숙의도 있었지만 새 중전 김씨에게 한동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조는 문 숙의의 처소를 찾았다. 이때 숙의 문씨는 영조에게 아양을 떨었다. "전화, 신첩의 소원은 나라 안의 명승.. 2020. 9. 3.
사도세자의 방탕 생활 1. 1744년 영조 20년 1월 세자가 열 살이 되자 동갑인 홍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홍씨는 홍봉한의 딸로 1735년 영조 11년 6월에 태어났고 이 여인이 후일 혜빈으로 봉해지는 혜경궁 홍시로서 정조의 어머니다. 세자빈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은 그 해 자신을 위해 특별히 실시된 문관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고, 그 뒤 영의정까지 올라 노론의 거두가 되었다. 1747년 영조 23년 12월 세자가 13세 때 조세를 체납한 백성들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 벌어졌는데 겨울 찬 바람이 몰아치는 감옥에 체납자들을 몰아넣고는 발가벗겨 추위에 시달리게 하는 잔혹한 방법을 썼다. 영조는 형조판서 이종서에게 대신들과 상의하여 다른 방법을 쓰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때 대신들 앞에서 세자가 겁 없이 엉뚱한 반박 질문을 던졌다. .. 2020. 9. 2.
혜경궁 홍씨의 그날의 기록 <한중록> 혜경궁 홍씨(헌경왕후)의 본관은 풍산(豐山)이며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도세자(思悼世子)라고도 불리는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빈(嬪)으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 재위 1777~1800)의 생모이다. 생전의 존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혜빈(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이며 사후의 시호는 헌경(獻敬)이다. 1744년(영조 20) 10세의 나이로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아들인 장헌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했으며, 1750년(영조 26) 장남인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을 낳았고, 1752년(영조 28) 차남인 정조를 낳았다. 그리고 뒤이어 청연공주(淸衍公主, 1754~1814)와 청선공주(淸璿公主, 1756~1802)를 낳았다. 하지만 맏아들인 .. 2020. 8. 26.
뒤주에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두 번째 왕자로 이름은 이선(李愃),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다. 잘 알 듯이 영조는 조선의 국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재위했다(각 82세, 52년). 영조는 정성(貞聖)왕후(1692∼1757)ㆍ정순(貞純)왕후(1745~1805) 등 왕비 2명과 정빈(靖嬪) 이씨(1694~1721)ㆍ영빈(暎嬪) 이씨(1696~1764)ㆍ귀인 조씨ㆍ후궁 문씨 등 후궁 4명을 두었다. 왕비에게서는 후사를 보지 못했고, 후궁에게서만 2남 12녀를 두었다(그 중 5녀는 일찍 사망했다). 첫 아들인 효장(孝章)세자는 즉위하기 전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숙종 45년(1719) 2월 15일) 9세로 요절했다(영조 4년(1728) 11월 16일). 둘째이자 마지막 아들.. 2020. 8. 25.
사도세자, 운명의 그날 < 임호사화 > 임호사화는 1762년(영조 38) 윤5월, 영조가 대리청정(代理聽政) 중인 왕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1762년(영조 38년) 윤5월 13일,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어죽게 만든 사건이다. 임오화변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辛壬義理)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 다양한 원인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비상식적인 재난, 변괴를 뜻하는 '화변'으로 명명되었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라고 명령했고,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윤 5월 13일 영조는 창덕궁에서 갑자기 사도세자를 불러내었다. 이에 세자를 교육하는 시강원의 관원들과 세자와 동궁을 호위하는 익위사 .. 2020. 8. 20.
조선 21대왕 영조 - 이금 영조는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 1694~1776)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이다. 1724년부터 1776년까지 52년간 왕위를 지켰던 그는 손자 정조와 함께 18세기 조선을 중흥기로 이끌었다. 그 자신 콤플렉스와 개인사적 불행을 안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탕평책을 통해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했으며 이전의 그 어느 왕보다도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 조선 시대 몇 안 되는 성군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평가받고 있다. 영조의 재위기간은 1724∼1776이며 이름은 이금(李昑),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숙종의 세 아들(景宗·英祖·延齡君) 중 둘째이며,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이다. 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왕후(貞聖王后)이고, 계비는 김한구(.. 2020.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