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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284

사도세자, 운명의 그날 < 임호사화 > 임호사화는 1762년(영조 38) 윤5월, 영조가 대리청정(代理聽政) 중인 왕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1762년(영조 38년) 윤5월 13일,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어죽게 만든 사건이다. 임오화변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辛壬義理)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 다양한 원인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비상식적인 재난, 변괴를 뜻하는 '화변'으로 명명되었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라고 명령했고,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윤 5월 13일 영조는 창덕궁에서 갑자기 사도세자를 불러내었다. 이에 세자를 교육하는 시강원의 관원들과 세자와 동궁을 호위하는 익위사 .. 2020. 8. 20.
소론이 주도한 반란 <이인좌의 난> 이인좌의 난은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을 말한다.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며, 무신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이라고도 한다. 이인좌의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현좌(玄佐)이다. 청주(淸州) 송면(松面) 출신으로 조선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후손이다. 조부인 이운징(李雲徵)은 숙종 때에 승지(承旨)·강원도 관찰사·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처는 남인(南人)의 거두인 윤휴(尹鑴)의 손녀 윤자정(尹紫貞)이다. 이인좌는 남인의 명문가 출신이다. 조부 이운징은 탁남(濁南)의 영수인 허적(許積)의 추천으로 관직에 올라 그와 가깝게 지냈으며, 처조부인 윤휴는 청남(淸南)의 영.. 2020. 8. 14.
세종. 문종 시대 관련 인물 1 1. 혜빈양씨 -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후궁이다.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의 어머니이며, 손자뻘이 되는 단종의 유모였다. 본관은 청주이고, 시호는 문혜(文惠), 민정(愍貞)이다. 현감 양경과 부인 이씨 슬하의 외동딸로 태어나 처음에는 내명부 예하 는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되었다. 정1품의 빈에 오른 후 혜빈이라는 칭호를 하사 받았다. 자식으로는 세 아들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을 두었다. 그녀가 영풍군을 키우고 있을 당시, 세자빈이 단종을 낳은 후 이튿날 갑자기 죽게 되자 세종은 문종에게 알려 경혜공주와 단종을 혜빈에게 맡기도록 했다. 혜빈은 기뻐하며 자청했고 단종과 경혜공주를 극진히 보살폈다. 특히 직접 기른 단종에게는 더욱 지극한 사랑을 주었으며 단종 또한 혜빈의 품에서 잠들기를 .. 2020. 8. 10.
영조, 정쟁의 폐단을 없애다 < 정미환국 > 정미환국이란 1727년(영조 3) 정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당색이 온건한 인물로 인사를 개편한 정국(政局)이다. 정미환국의 배경 - 병신처분으로 권력을 장악한 노론은 숙종과 결탁하여 남인과 소론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이 낳은 세자(경종)을 폐출하고 연잉군, 즉 훗날의 영조를 세자로 세우려 하였다. 이를 위해 노론은 일종의 덫으로서 세자의 흠결을 잡기위해 대리청정을 맡기도록 숙종에게 청하고 비슷한 생각으로 세자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내심 연잉군을 보위에 올릴 생각이었던 숙종도 그에 응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경종의 대리 청정은 그를 쫓아내게 할 만큼의 흠집이 발견되지 않았고, 노론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숙종이 급격히 병약해져 원래의 계획을 실행할 틈도 없이 60세를 일기로 승하한다. 이에 경종이.. 2020. 8. 6.
연잉군 (훗날 영조) 은 경종을 독살 했을까? 조선의 20대 왕인 경종이 이복동생이자 당시 세제 신분이었던 영조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은 이 사안은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조선을 50년 동안 뒤집고 흔들어댄 초대형 사건이었다. 이 독살설이 등장한 배경은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비롯된다. 원래 몸이 허약하던 경종은 1724년 8월 2일부터 건강이 위독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병상에 누워있다가 2주 정도가 지난 20일에 저녁식사로 게장과 생감을 식사로 먹었는데, 이 게장과 생감은 전통적으로 한의학계에서 매우 나쁘게 보는 음식이다. 결국 식사 직후부터 복통과 설사가 악화되자 의관들은 경종이 한의학적으로 꺼리는 게장과 감을 먹은 사실을 알고 곽향정기산과 두시탕, 인삼차를 계속 처방했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고, 24일 오전에 경종은 아예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 2020. 8. 2.
조선 21대왕 영조 - 이금 영조는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 1694~1776)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이다. 1724년부터 1776년까지 52년간 왕위를 지켰던 그는 손자 정조와 함께 18세기 조선을 중흥기로 이끌었다. 그 자신 콤플렉스와 개인사적 불행을 안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탕평책을 통해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했으며 이전의 그 어느 왕보다도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 조선 시대 몇 안 되는 성군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평가받고 있다. 영조의 재위기간은 1724∼1776이며 이름은 이금(李昑),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숙종의 세 아들(景宗·英祖·延齡君) 중 둘째이며,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이다. 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왕후(貞聖王后)이고, 계비는 김한구(.. 2020. 8. 1.
영조실록 은 조성완조 제21대 왕인 영조의 재위기간인 1724년에서 1776년인 5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로서,모두 1백 27권으로 간행되었다. 고조 26년인 1889년에 묘호를 영조로 추존 개정한 뒤에는 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다른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영조가 세상을 떠난 2년 뒤인 1778년 정조2년인 2월에 영조실록청이 설치되었고 편찬이 시작되었다. 그 뒤 3년 6개월만인 1781년 7월에 완성 간행되어, 사고에 봉안되었다. 편찬에 참여한 전후 실록청 총재관과 도청당상은 다음과 같다. 총재관 - 김상철, 서명선, 이은, 이휘지, 정존겸 도청당상 - 이쉬지. 서명웅, 황경원, 이복원, 채제공, 조준, 김종수, 유언호, 이성원, 이명식, 이연상, 정일상, 김익, 김.. 2020. 7. 27.
조선 20대 왕 경종 - 이윤 경종은 이름 이윤(李昀), 자 휘서(輝瑞). 숙종의 아들. 어머니는 희빈 장씨(禧嬪張氏,장희빈)이다. 경종의 비(妃)는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 계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단의왕후는 경종이 세자로 있을 때 사망하여 동구릉 혜릉에 안장되었고 계비 선의왕후 또한 소생이 없이 1730년(영조 6년)에 사망하였다. 숙종의 (소생은 후궁 소생이지만)첫 아들이었던 까닭에, 태어난지 100일도 안되어 원자 책봉을 받았다. 무엇보다 당시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희빈 장씨의 소생이었고, 연잉군과 연령군 같은 다른 왕자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왕자가 숙빈 최씨 소생의 요절한 아들 밖에 없었기에 그는 숙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장희빈과 이를 배경으.. 2020. 7. 26.
경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20대 왕인 경종의 재위기간인 1720년에서 1724년인 4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15권 7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 되었다. 은 영조 2년인 1726년투너 편찬하기 시작하여 8녀인 1732년 2월에 완간하였다. 불과 7책의 작은 실록임에도 6년간의 긴 세월이 걸린 것은 당시 노론. 소론 간의 대립이 심하여 1727년 영조 4년의 정미환국 등 몇 차례의 정국 변동이 있었고, 신임옥사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 좌의정 이집, 우의정 조문명이 총재관이 되고, 대제학 이덕수, 부제학 서명균 등이 도청 당상이 되어 편찬을 주관하였다. 은 영조 초에 편찬된 을 정조 때 수정하여 .. 2020.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