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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야사이야기16

안하무인의 표본 대제학 변계량 변계량의 자는 거경, 호는 춘정이다. 목은 이색의 제자로, 14세에 진사, 15세에 생원, 17세에 문과에 급제한 수재였다. 고려조에서 진덕박사 등을 지냈고, 조선조에 들어와 주로 태종 때에 활약했다. 벼슬이 대제학을 거쳐 우군도종제부사에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나 문명이 높았고, 시조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성품이 인색하기로 좆정의 비판이 자심했다. 변계량은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남에게 절대로 빌려주지 않았다. 그는 동과를 즐겨 먹었다. 동과는 동아라고도 하는데, 한방에서 그 씨를 약재로도 썼다. 오줌을 잘 나오게 하며, 부증, 소갈증 등에 쓰였다. 변계량은 소갈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동과를 잘라먹은 뒤 자른 자리에 꼭 표를 해두었다.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뿐만이.. 2020. 7. 30.
허울뿐인 권자에 앉은 비운의 왕 정종 정종은 성품이 순하고 차분했다. 그러나 무에를 닦아 아버지를 짜라 전쟁터에 나가 여러 차례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방석의 난을 편정하고 신하들이 방원을 세자로 삼으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방원은 민심이 자기편이 아닌 것을 알고 형 방과(정종)를 세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아버지의 노여움이 풀릴 것 같았다. 이성계는 막내아들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방원에게 뒤통수를 맞고 넋이 빠져 있었다. 노여움이 머리끝에 머물고 있던 터였다. 저간의 사정을 환히 꿰뚫고 있는 방원이 세자 자리를 덥석 차고앉을 리 없었다. 방원이 형 방과를 찾아갔다. "형님, 이제 우리 동복 형제가 나라를 끌고 가야 합니다. 형님께서 세자가 되소서." 방과는 방원의 마을을 읽고 피식 웃었다. 방원의 술수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 7. 28.
교만한 권세가 이숙번의 말년 이숙번은 태종의 일등공신이다. 본관은 안성으로, 두 번의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그는 좌명공신으로 안성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우찬성에 이르었다. 이숙번은 칠원 부원군 윤자당과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형제다. 윤자당의 어머니 남씨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경상도 함양에서 살았다. 윤자당이 일곱 살 때 남씨는 아들을 데리고 무당을 찾아가 운수를 물었다. 무당이 말했다. "부인, 걱정 마시오. 이 아이가 귀하게 될 상이오. 허나 반드시 아우의 힘으로 귀하게 될 것이오." "곧 아우가 생길 일이 있소." "내가 재혼이라도 한단 말이오?" "그렇소" "아이, 망측해라." "필자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오. 두고 보시오." 무당의 말대로 남씨는 얼마 후 이씨 집에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 2020. 7. 23.
배극렴에게 독설을 날린 기생 현과 48현이 산다는 조선이 새로이 탄생했으나 민심을 얻지 못했다. 두문동에 문무관 72현과 42현이 산다는 소문이 퍼져, 백성들 사이에는 고려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어갔다. 새로이 나라를 세웠다는 사람들은 구관의 재산을 빼앗아다가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백성들을 위해 역성혁명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백성들을 위하기는커녕 자기들 잇속을 챙기는 것 외엔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개서 백성들은 새 정부가 수도를 옮기기 위해 한양에 궁궐을 짓고 있던 터여서 삶의 터전마저 잃게 되어 절망하고 있었다. 개성에 남아 있자니 벌이가 막막했고, 조정을 따라 한양으로 가자니 낯선 땅이 두렵기만 했다. 새 조정에 협조했던 고려의 신하들은 자시들이 이제껏 이뤄놓은 개셩의 가산을 정리하고 한양으로 옮기는 일이 심란하기만 했다. .. 2020. 7. 23.
이색의 시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 3은 중의 하나다. 이성계와는 친숙한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났고, 14세에 성균관 시험에 합격한 준재였다. 그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여러 차례 출사를 종용받았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망국에 대한 시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 전공을 찬양한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다. 이성계가 운봉 싸움에서 왜구의 적장 아기발도를 죽이고 개선했을 때, 권근. 김구영. 이색 등 당대의 문관들이 시를 지어 하례했다. 이색의 시는 찬사의 극치였다. 적을 소탕하는 썩은 나무 꺾기 같았네 삼한의 기쁜 기색, 여러분에게 달렸소 백일 같은 그 충성, 하늘에 안개 걷히고 청구에 떨치는 위엄, 바다가 잔잔하오 빛난 자리에 무공을 칭송하는 오래요 능연각 높은 집에 영웅의 화.. 2020. 7. 17.
태조 이성계가 만든 충신 두문동 72현 (야사이야기) 충절을 상징하는 두문동은 경기도 개퐁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예 지명이다. 고려가 망하자 조선을 반대했던 고려 유신 신규. 신혼. 신우. 신순. 조의생. 임선미. 이경. 맹호성. 고천상. 서중보. 성사재 등 72현이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 새 왕조에 있어서는 두문동이 눈엣가시였다. 아무리 회유책을 쓰고 높은 관직을 준다 해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이성계는 생각다 못해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려는 뜻도 있었으나, 고려의 충절 높은 유신들을 끌어안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과거를 치르는 날 이성계는 초노한 마음으로 두문동의 인재들이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성계의 짝사랑일 뿐이었다. 두문.. 2020. 7. 15.
태종 야사 - 스승의 깊은 뜻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고려 말 젊고 패기에 찬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망을 가슴에 품고 그 뜻을 이루려 조정의 중신들을 비롯한 노장군 최영과 은근히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국운은 서서히 기울어져 가고 민심은 흉흉해져 백성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도 소위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고 하는 이들은 제 밥그릇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운곡 원천석은 이런 세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안타까워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 '어허,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리.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백성들의 안위를 바로 헤아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원천석은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치.. 2020. 7. 14.